반찬투정

분홍 소시지

by 보라보라

분홍 소시지를 보면 난 항상 할머니와 엄마가 생각난다. 그리고 반찬 투정했던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동생들과 나는 7살, 9살 차이가 난다. 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온 세상의 주인공은 나였다. 특히, 시골에 살 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더더욱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랑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별로 없었다. 그럼 난 내가 먹을 반찬이 없다고 투덜거렸고, 할머니는 빨간 김치를 물에 씻어주면서 안 매우니깐 먹으라고 내 수저로 밥 한 숟갈 떠주면서 그위에 물에 씻은 김치를 올려주셨다.


이럴 때 엄마는 나의 투정에도 불구하고 아무 반응 없이 식사를 하셨고, 심지어 밥을 다 먹지도 않은 날 두고 부엌으로 상을 옮겨갔다. 그럼 난 부엌으로 쫒아 가 배고프다고 생떼를 부리며 엄마의 신경을 건드렸다.

엄마는 단호하게

“반찬 두고 안 먹는 너는 밥 먹지 마. 배가 고파봐야 알지!”

라고 말하곤 설거지까지 마무리한 후 부엌 불까지 끄고 밖으로 나가셨다.


내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냉정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서러워 그 자리에 서서 혼자 울고 있으면, 그사이 할머니는 어두운 부엌 불을 켜고 금방 사온 분홍 소시지를 보여주면서

“울지 말고, 할머니가 얼른 소시지 구워줄게. 기다려~”

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활짝 웃으면서 그 옆에서 서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분홍 소시지에 밥 한 그릇 뚝딱 먹었다.


이런 할머니의 보살핌 덕분에 시골에 살 적에는 반찬 투정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래야만 할머니가 날 위해 만들어주는 맵지 않은 반찬들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엄마가 날 위해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었음 하는 바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내가 반찬 투정을 안 하기 시작한 건 엄마의 지친 모습을 본 이후다.

평소 유치원이나 학교를 간다고 일어나면 엄마는 언제나 깔끔한 모습으로 나에게 옷을 꺼내 주거나, 옷을 입혀주거나 하셨는데 동생이 태어난 후 피곤에 지쳐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머리 묶음을 한 채 날 챙겨주는 엄마를 보고 의아해했다.

그때 알았다. 엄마가 보살펴야 할 사람이 나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나름 그때부터 반찬 투정을 안 한 것이 엄마에게 효도한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말하니, 코웃음 치신다.




시골에 살 적에 할아버지가 운영하신 정미소와 구백화물(택배업) 때문에 매일 인부들 식사와 손님들 응대에 쉼 없었던 것이다. 이 일들은 모두 일찍부터 시작했고, 엄마는 가족들 식사시간에 맞춰 또 밥상을 준비했기 때문에 그 사이 날 위한 반찬을 할 틈이 없었던 거란다.



엄마의 코웃음에 뒤늦게 어린 내가 뭘 알았겠냐고, 나만 관심받길 원했을 뿐이야 라고 말하며,

“미안했네 오마니~”라고 했다.

sticker sticker

엄마는 분홍 소시지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날까?

엄마가 마음은 있지만 잘 챙겨주지 못했던 분홍 소시지로 기억하려나 아님 반찬 투정 오지게 했던 철없는 딸내미를 생각나게 할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닮지 않은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