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꼬라지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by 보라보라

※ 꼬라지 : 성깔의 전라도 방언


오랜만에 서울역에 갔다. 많이 달라진 기차역 분위기에 놀라웠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복잡했다.

복잡한 서울역 분위기를 감상하다 어릴 적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다.




9살 여름방학 때 부천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겨울 방학마다 부천 외가댁을 다녀 갔었다.

그 덕분에 난 매년 기차를 탔었다.

기차는 안에서 돌아다닐 수 있고, 주기적으로 순회하는 간식 수레가 있어 맛있는 간식을 사 먹는 재미도 있었기에 난 외할아버지 댁에 다녀 갈 적마다 기차를 탄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기차역에서는 여유 있게 구경하기보다 분주하게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야 했기에 많은 인파 속 기차역은 어린 내겐 정신없는 장소로 여겨질 뿐이었다.


아마 6-7살 때쯤 일이다. 외가댁에 가기 위해 탄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했고, 단잠을 자던 나는 일어나기 싫었지만 일어나야만 했다.

그래서 심술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면서 나의 못된 심술이 발동하여 꼬라지를 부린다고 무작정 엄마 손을 놓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걷던 엄마는

“보라야! 너 어디가? 먼저 가다 잃어버린다!”라고 말했고, 난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고, 뒤에서 엄마는 내 손으로 잡으러 오지 않았다.


나는 심술이 잔뜩 오른 얼굴로 혼자 무작정 걷다가 갑자기 멈췄다.

사람은 많은데 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꼬맹이라곤 나밖에 없는 것 같고, 엄마 아빠는 어딨지? 하는 생각에 뒤돌아봤을 때 다 모르는 사람들만 있었다.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으면서 낯선 얼굴들이 무섭게 보였고,

‘아~ 엄마 아빠는 날 정말 두고 간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눈물이 막 나왔다.

평소라면 소리 내서 울었을 텐데 그때는 내가 잘못한 걸 알아서 그랬는지, 아님 무서워서 그랬는지 소리 없이 흐느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누가 내 손을 덥석 잡아서 정말 무서웠다. 울다 멈춰서 올려다보니 다행히 아빠 얼굴이었다.

아빠는 내가 혼자 가기 시작한 후부터 지켜보며 쭉 쫓아왔던 거다. 난 그때 우리 아빠가 그렇게 천사처럼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빠 손을 잡고 나는 다시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엄마는 잔뜩 화가 나서 날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놀란 날 달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사람 많은 곳에서 너 엄마 말 안 듣고 그냥 갔지. 왜 그냥 갔어? 뭘 잘했다고.. 아빠가 너 안 쫓아갔으면 너 어떻게 할 뻔했어? 잘못했어 안 했어?”

“엄마 잘못했어요.”


그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 말이 목에 걸렸던 걸까. 아님 안심했던 걸까. 그제야 난 큰소리로 펑펑 울었다.

나를 꼭 안아주던 엄마는

“또 이렇게 꼬라지 부려봐! 그때는 아빠도 안 쫓아갈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 뒤로 사람들 많고 복잡한 곳에서는 절대 꼬라지를 부리지 않았다. 또, 그 후 나에게 서울역 광장은 무서운 장소로 기억되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바뀐 서울역을 보며 감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바뀐 서울역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 나 그때 서울역에서 꼬라지 부렸던 일 기억나? 정말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혼자 갔을까.. 그때 정말 잃어버렸음 어떻게 됐을까.”

“너 몰래 쫓아갔겠지. 그냥 갔겠냐! 근데 너 요즘도 그런 꼬라지 나오더라. 아주 큰 코 당해봐야 그 꼬라지 안 부리지!”

“요즘도 내가 꼬라지를 부린다고? 내가?”


집에 가면 요즘도 내가 그런 꼬라지를 부리는지 신랑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