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빠가 "오늘은 할 일이 많네." 하시는 거다.
나 "뭘 또 그렇게 만질게 많아서 많대~. 맨날 설렁설렁하니깐 그렇지. 아냐?"
아빠 "웃기시네." 가벼운 농담을 하고 전기 드릴 세트를 꺼내셨다.
얼마 후 아빠가 작업하는데 탄 냄새가 나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뭘 그렇게 만들길래. 탄 냄새까지 나?"
"우리 똥강아지 손주 녀석 기차가 고장 나서 고칩니다. 그 녀석은 살살 갖고 놀지. 맨날 고쳐달라고 하네."라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짜증 섞인 말투가 아니다.
'얼마나 대단한 장난감이길래 납땜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 아빠 자리로 가봤다.
세상 장난감 혼자 다 수리하는 할아버지인줄.. 사방이 드릴로 뚫은 노란 기차의 플라스틱 가루로 바닥이 어질러져 있었고, 납땜으로 탄 냄새까지 진동을 했다.
"아빠, 고치는 건 좋은데 다 하고 정리해! 몰래 몸만 빠져나가지 말고!"
"나 정리하는데?"
"아빠가 정리하는 건 아빠의 드릴이나 드라이버 같은 것만 치우잖아."
"..........."
납땜까지 하면서 수리하던 작업이 마무리가 되어가는지 스위치를 켠 소리가 들렸다. "윙~"
아빠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왜 뒤로 가?"
아빠가 어이없다는 듯 "앞으로 가도 시원찮을 판에 왜 뒤로 가?"
옆에서 듣던 나는 웃겨서 "뭐야. 제대로 알고 만져야지. 이거 뭐야~. 똥강아지가 그러겠다. 할비가 고쳐준 기차는 왜 뒤로 가는 거예요?라고 하면 웃기겠다. 아빠. ㅎㅎㅎ"
아빠 "ㅋㅋㅋㅋ 네가 망가뜨려서 뒤로 간다 해야지." 말씀은 그렇게 했지만 다시 찬찬히 장난감 기차를 만져보더니 조금 후에 "됐다. 바퀴가 잘못 껴져서 그랬어. ㅋㅋ 뒤로 가는 기차 될뻔했다. "
뒤로 가는 기차가 될 뻔한 녀석.
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옆에서 보고 듣고 있는 이 상황이 왜 이리 귀여워~ 울 아빠 맞아??
우리 아빠는 무뚝뚝하고, 평소 표현도 서툴다.
특히 아빠와 통화할 때 본인의 용건이 끝나면 상대 말도 안 듣고 그냥 끊어버린다. 그래서 한동안 아빠가 화가 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요즘엔 또 먼저 끊었어!라고 친정집에 가서 아빠에게 투덜거리게 된다.
어릴 적 갖고 놀았던 장난감을 아빠는 이렇게까지 고쳐주지 않았던 것 같은 데라는 어린 기억도 스쳐간다.
그런 아빠가 손주 내리사랑이 이렇게 세심할 줄이야.
첫째 조카가 남자애라 장난감 대부분이 기차, 공룡, 로봇들인데 조카가 힘도 세고 격하게 놀아서 그런지 툭하면 부러지고, 고장 나고, 심지어 자동차의 바퀴가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우리 아빠는 잡동사니 많이 들어있는 공구함으로 뚝딱뚝딱 고쳐서 조카가 다시 그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첫째 조카는 고장 난 장난감이 있으면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할비. 이거 고쳐주세요."라고 말한다. 미워할 수 없는 녀석과 그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아빠의 모습이다.
이 따뜻한 케미가 감동적이다.
우리 자매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다음 생에는 아빠 자식으로 태어날 게 아니라 아빠 손주로 태어나야 해. 저 똥강아지가 받는 사랑이 너무 부러워~"
오늘도 우리 아빠이자 사랑스러운 조카의 할비는 장난감을 고치고 있다.
지난 1월 할아버지와 조카가 함께 즐긴 썰매. 손주 바보 할아버지 너무 활짝 웃으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