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평온한 장면
아빠가 겨우내 작은 텃밭에서 키운 쪽파를 뽑아 오셨다.
'곧 엄마를 부르겠군.' 싶었는데 역시나 아빠는 한 아름 뽑아온 쪽파를 마당 한편에 놓고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나 쪽파 뽑았는데?"
"나 지금 은행 일 보러 나왔는데.. "
"버스 타고 갔어? 오후에 내가 데려다준다니깐.. 이거 뽑았는데 어째?"
".... 은행 일 보고 갈게."
이어지는 아빠의 혼잣말
"아니, 오후에 가자니깐 왜 아침부터 갔어? 파 뽑는다고 말해놨는데.. 에이.."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하다 아빠의 혼잣말을 듣고 난 엉덩이를 떼어야 할 때가 되었구나 직감했다.
"아빠, 햇볕도 쐬면서 하게 이쪽에서 같이 하자."
"지금 나는 더운데.."
"난 추운데? 아빠 혼자 할 거야?"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옮긴다.
아빠는 "내가 뿌리 잘라 줄 테니깐, 너는 다듬기만 해."
무언의 동의를 한 후 작업을 시작했다.
아빠랑 나란히 앉아서 쪽파를 다듬는 이 모습. 낯설다.
'어쩌지 이 낯섦을.. 새아빠도 아닌데 이 어색함 어쩔 거야..'
흠.. 아빠와 이야기 편한 화제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아빠, 나 집 옮기고 싶은데 아빠 아는 부동산 아저씨 어때? 그 아저씨한테 부탁할까?"
"아, 그 친구 부동산 잘 몰라. 그냥 너네가 따로 알아보는 게 나을걸? 몇 평으로 가게?"
"우리 20평대 후반이지. 내가 찜해 놓은 몇 곳이 있는데 실물은 아직 못 봤어. 조만간 움직여 봐야지."
이후 우리는 부동산 이야기를 했다.
내 전화가 울려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마당으로 나오자
아빠 혼자 쪽파를 다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서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 무뚝뚝한 아빠가 손수 쪽파를 다듬고 있다.
동생들도 보지 못한 귀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빠, 할아버지는 이런 거 안 하셨는데. 할머니가 보면 깜짝 놀랄 모습이야~"
"그치. 원래 아빠 이런 거 안 했는데.."
"아빠, 요즘 남자들은 이런 것도 다 같이해. 사위들 봐봐 잘하잖아. "
"그치. 그래서 나도 하는 거야. "
"ㅋㅋㅋㅋ 엄마 눈치 보여서 하는 거야?ㅋㅋㅋㅋ"
아빠도 키득키득 웃으신다.
봄날 따뜻한 햇살 등지고 앉아 마당에서
아빠랑 쪽파를 다듬는 이 시간이 이렇게 평온하고 행복한 줄 몰랐다.
평소 엄마가 재료 손질하면 도와준 적은 있지만, 아빠와 단둘이 쪽파를 손질해서 그런지
따뜻한 햇살에 내 마음이 따뜻해져 그런지
아빠와의 쪽파 다듬으며 나눈 대화, 아빠의 쪽파 다듬는 모습 꼭 기억해 두고 싶다.
아빠와 온전히 다듬은 귀한 쪽파들은 파김치로 만들 예정이다.
식구들한테 아빠의 정성이 절반은 들어간 거라고 한껏 아빠를 치켜세워줘야겠다.
또, 엄마가 만들 파김치는 얼마나 맛있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