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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를 시작하다.

by 보라보라

나에게 쇼핑이란 엄마와 함께 물건을 사러 가는 것, 특히 옷가게를 가는 건 내게 너무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이 옷이 내 모습에 어울리는 것인가.’ ‘이 옷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이 옷을 평소 입고 다닐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

숫자놀이처럼 1+1=2, 6*9=63. 상의는 66이요, 하의는 77이면, 날씬해 보이고 싶을 때는 무조건 상의는 조금 루즈하게 하의는 딱 붙는 옷을 입을 것. 루즈한 상의가 너무 뚱뚱해 보인다면 그냥 긴 셔츠를 입을 것. 등 이런 식으로 수학공식처럼 내 신체 사이즈에 맞는 딱딱 정해진 답안이 있길 바랬다.

그래서 엄마에게 난 말했다. “엄마, 그냥 단정해 보이는 것으로 엄마가 알아서 사줘. 엄마가 사 오는 것으로 그냥 입을게. 난 옷 고르는 게 제일 힘들어.”


엄마는 내가 여자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관심도 없고, 의욕도 없는 내가 이상해 보였으리라. 그래서 학창 시절 옷 쇼핑을 내가 직접 한 적이 없다. 옷이란 엄마가 사 온 옷이었고, 사이즈만 맞으면 그냥 입는 것이었다.

연애를 할 때가 되니 그나마 옷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옷에 관심은 생겼지만 어떻게 매칭해 입고, 꾸미고 이런 것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옷가게 마네킹에 걸린 옷, 잡지에서 본 옷 스타일대로 입어봤지만 정작 내 신체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매번 옷가게 가서 한숨만 푹푹 쉬었다.

“엄마, 내 다리 왜 이래? 축구선수 다리야. 엄마 내 팔뚝 뭐야. 이 블라우스 팔뚝이 껴. 이 옷도 패스.” 이런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연애 때 보통 오피스 룩을 주로 입었다. 그나마 청바지에 흰 셔츠로 무난한 평상복을 입었을 뿐. 이런 상황이니 여성스러운 샤랄라 치마나 원피스는 절대 입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을 만난 후 내 옷은 직접 고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남편의 권유였다.


남편은 연애 때 오피스 룩만 입고 나오는 날 보고 “편하게 입고 운동화 신고 나와.”

“난 이게 편한데. 운동화가 한 켤레 있는데 그것도 잘 안 신어.”

그는 의아해했다. “왜? 운동화가 하나밖에 없어??”

난 “고등학생 때도 체육시간에만 운동화를 신어서,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는 한 운동화는 안 신는데?”

“운동화가 얼마나 예쁜 아이템인데 난 운동화만 신어. 구두는 한 켤레뿐. 우와 운동화가 하나밖에 없다니. 다음에 운동화 신고 나와 봐.”


이후 운동화 신고 데이트에 나온 내 모습을 보고 훨씬 편해 보인다고 했다. 그 후 그는 틈나는 대로 내게 운동화를 구경하게 했고, 설명도 해줬다.

난 운동화 가게에 가면 흰색, 검은색, 브랜드별 로고가 박힌 것, 화려한 색의 운동화 정도로만 보였다. 결국 가게에서 난 운동화를 선택하지 못하고 남편과 직원의 추천에도 다 거절하고 나왔다.


이런 나를 보고 지칠법한 그는 내게 여름휴가 때 커플 신발로 버킨스탁이라는 샌들을 선물해줬다.

‘엥?? 이런 슬리퍼를 커플화로 신자고??’ ‘딱딱해 보이는데 뭐가 예쁘다는 거지.’ 첫 느낌이 아주 별로였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그는 내게 새로운 신발을 사줬다는 기쁨에 취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름휴가 때 그가 사준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는데 의외로 시원했고, 딱딱함보다 편안했다. 그래서 나중에 말해줬다. “진짜 고맙고, 엄마가 사준 신발 외에 처음 선물 받은 신발이야.”




이를 계기로 그의 안목을 신뢰하게 되었고, 그와 운동화 가게를 구경하는데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의 추천대로 운동화를 한두 켤레 구입하기 시작했고, 그와의 데이트는 무조건 운동화였다.

그가 추천한 운동화 중 제일 마음에 든 것은 아디다스 슈퍼스타였다.


1.jpg 내가 좋아하는 운동화 @ 아디다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운동화, 패션 아이템이 생긴 것이다.


그 후 그는 내게 운동화에 맞는 옷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의 추천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추천해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옷들이 편하고, 좋았다.


이제는 그와 옷가게나 신발가게에 가면 내가 찾는 스타일을 말하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기준이 확실해지면서 그가 추천한 아이템이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오히려 내가 고른 게 더 나은지 설명까지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전에는 절대 상상도 못 했던 TV 속 연예인의 스타일이나 아이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낯설지만 예전 나를 생각하면 너무 반가운 변화다.


내가 옷과 신발에 대한 내 취향과 선택이 확실하게 된 시작은 추천해주는 이에 대한 신뢰와 그 아이템을 착용할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또, 예전의 수학공식처럼 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 패션은 답이 무궁무진하다는 매력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스타일리시한 사람일까 오해를 할 것 같은데, 그런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알고 날 예쁘게 보이고, 편하며 과하지 않은 게 뭔지 아는 사람이 된 수준이다.


이제야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찾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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