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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편네가 됐다.

by 보라보라


요즘 아무튼 16시간 공복을 실천하고 있다.

즉, 나 자신과 약속으로 간헐적 단식을 하는 중이다.


평일에는 이 약속이 잘 지켜지지만, 토요일 아침이면 치즈군이 날 도와주지 않는다.


치즈군은 평일 아침에는 새벽 배달되는 유제품을 먹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 주말 아침이면 그의 위장 시계가 난리를 친다.

이럴 때 배짱 튕기고 싶지만, 평일 저녁 담당은 치즈군이라서.. 내가 배짱을 튕길 수가 없다.

주말이라도 집에서 식사는 내가 챙기는 게 맞는다는 무언에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아침식사를 군말 없이 만들어줬다.


그러다 난 11시가 돼서 간단히 우유 한 잔과 비스킷 한 개를 먹었는데..

요즘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또, 차려 먹기도 귀찮고.. 방바닥과 일체가 되어 뒹굴고 있는데 치즈군이 그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내게 특별 요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야 횡재하는 기분으로 콜을 외쳤고, 그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특별 요리이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지 먼저 묻고 확인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가 야심 차게 짜잔~~ 하고 만들어준 특별 요리.


삶아진 소면 위에 3분 짜장 소스가 올려진 일명 <짜장 국수> 한 그릇이었다.

손도 커서 내 양의 두 배는 삶아진 소면을 보고.. 난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짜장 라면이 있는데 그걸 끓여주지.. 왜 굳이... 소면으로 된 짜장 국수냐...


전에도 치즈군이 자기는 소면 위에 3분 짜장 소스가 올려진 짜장 국수가 맛있다고 해서 본인이 다 먹고 난 얼마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분명히 말했었다.


"난 소면 요리는 골뱅이 소면이나 잔치/비빔국수, 설렁탕에 들어간 소면 아니면 싫어."


특히 카레나 짜장이나 가루 소스로 누군가 직접 만든 짜장이나 카레는 맛있다.


하지만 3분만 데우면 되는 레토로트식품은 뭔가 식감도 별로이고 싫어한다.

완벽히 내가 싫어하는 그냥 삶아진 소면 위에 싫어하는 3분 짜장 소스가 얹어진....


아놔... 특별 요리가 아니라 치즈군이 나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건가.


신나서 어때어때 묻는 그에게 난 힘없이 말했다.

"자기야, 내가 안 좋아하는 애들로만 만들어진 요리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


치즈군도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만든 거니깐, 먹어봐. 아니면 버려. 그래도 소면 밀가루 냄새 덜나 게 하려고 고춧가루 넣고 삶고, 박박 씻은 거야. 괜찮을 거야. "


미안하지만, 단호하게 나는 말했다.

"일단, 먹어볼게. 근데 이거 지난번에도 나 싫다고 했던 요리인데.. 나도 난처하다. 자기야."


역시나 안 좋아하는 애들로만 만들어진 요리는 아무리 남이 해줬다고 해도 맛없다.


겨우 몇 입 먹고 입안에서 겉도는 소면과 짜장 소스... 아.. 고역스러웠다.

차라리 짜장 라면을 끓여주지! 그게 좋았을 텐데..


결국 난 1/3도 겨우 먹고 버렸다.

음식을 버리는 건 나쁜 일이라는 건 알지만, 내가 싫어하는 요리에는 정말 얄짤없다.


그리고 오후 일정이 있어서 치즈군과 외출을 했다.

오후 3시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했다.


치즈군은 넉넉한 아침을 먹었기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꼬르륵 난리 치고 있는 위장의 시위에 애써 침착한 척 치즈군에게 말했다.

"우리 디저트에 커피 한잔하자. 케이크류나 빵류가 있으면 좋겠다. "

내가 얄미운 치즈군은 신나서 말했다.

"거봐. 배고프지! 줬을 때 먹었어야지. 쌤통이다. "


일을 보러 간 그곳에 여러 카페가 있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어디에도 팥빙수와 듣보잡 음료는 팔지만 빵이나 케이크류는 전혀 팔지 않았다...


절망...


근처 김밥 천국이라도 가야겠다 생각하고 찾아봤는데..

뭐냐.. 이 동네 평일에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다 문닫았다...ㅠㅠ

편의점만 겨우 문을 열었는데..

괜히 휴일에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챙기고 싶지는 않는 자존심이 있다. ㅋㅋㅋ


참 심술 맞다.

평일에 바쁘면 어쩔 수 없이 먹는 삼각김밥을..

또 평일 기분 나게 내 소중한 주말 한 끼를 해결할 순 없는 괜한 기싸움..


결국 난 부천에 돌아와서 오후 6시가 다 되어 겨우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부부 동반으로 만난 모임이었는데 식사 시작과 함께 난 말했다.

"아점으로 치즈군이 챙겨준 게 안 좋아하는 요리라서 안 먹었더니.. 벌받았나 봐."


치즈군 친구 왈 "야, 차라리 계란 프라이를 해주지. 전에도 싫다던 요리를 왜 했어? 눈치 없어.."


치즈군 친구 와이프 왈 "그래도 치즈군은 다정하네. 요리를 했잖아. 우리 신랑은 안 해. 겨우 프라이지."



ㅎㅎㅎㅎㅎㅎㅎ


복에 겨워 남편이 애써 해준 요리를 안 먹은 나쁜 여편네가 된 기분이었다.


난 그냥 안 좋아하는 요리를 보고 싫다고 거절한 거 말곤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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