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조카에게

by 보라보라

조카 바보인 내가 처음으로 조카 눈물을 쏙 뺀 날이 있었다. 그 녀석도 아마 그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친정 엄마랑 수다도 떨고 맛있는 간식도 먹고 싶어서 친정에 들렸는데 조카가 낮잠 자고 일어나서 친정 엄마에게 딱 붙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카에게 말했다.

“기범아, 이제 너네 엄마한테 가~. 왜 이모 엄마한테 딱 붙어 있는 거야~”

옆에는 조카의 엄마인 여동생이 있는데 조카는 나에게 눈을 크게 뜨면서 이렇게 말했다.


“할미는 내 엄마야! 이모 가!”


그 자리에 있던 엄마, 여동생, 그리고 나 셋은 조카의 말이 너무 웃겨서 다 같이 웃었다.


“기범아, 할미는 이모의 엄마이고, 너의 엄마는 여기 있잖아.”라고 말하면서

친정 엄마를 내가 끌어 앉자 조카가 엄마를 안고 있는 내 손을 풀려고 하면서 “아니야! 내 엄마야!” 정말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여동생도 그 모습을 보다가 웃겨서

“기범아 내가 네 엄마야, 이모 엄마가 너한테는 할미야. 그래서 기범이는 엄마한테는 엄마라고 하지, 할미는 할미라고 부르지 엄마라고 안 하잖아”라고

차분하게 이야기해도 인정하기 싫은지 조카는

“아니야! 엄마는 엄마고, 할미도 엄마야!”라고 떼를 썼다.

사실 조카가 할미를 엄마라고 여기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친정 엄마가 연년생으로 태어난 조카들 때문에 큰 조카를 한동안 친정 엄마가 전담으로 봤으니깐 아마도 큰 조카는 본인 엄마는 두 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문득 어릴 때 일이 생각났다.

어릴 적 7살 터울이 나는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난 한 번도 엄마와 떨어진 적 없었는데 하교 후 돌아온 집엔 엄마가 없었고, 일주일 후쯤 엄마는 나에게 여동생이라고 하면서 작은 아기와 함께 나타났었다.


그때, 엄마를 보고 엄청 반갑기도 했고, 내 엄마가 드디어 돌아왔다는 안도감 같은 게 들면서 여동생이라고 보여준 아기와 내 엄마를 이젠 함께 나눠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맞아 그땐 내 엄마는 오로지 내 엄마였음 했었는데..




조카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겠다.

이제 고작 4살짜리에게 너무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너무 빨리 알려준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때 그렇게 엄마! 소중한 내 엄마 했는데 크면서 옆에 있는 엄마를 너무 당연시하고, 소중함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 이후 친정을 들렸는데 조카가 있길래

“기범아, 할미는 누구야?, 너네 엄마는 어디 있어?” 묻자


“할미는 이모 엄마고, 내 엄마는 엄마야.”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요 녀석 빨리 인정했네~' 혼잣말하며,

이제 서열이 제대로 정리가 된 걸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