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빠 지인이 사무실에 오셨다.
코로나로 통 만나지 못했던 지인이신 것 같았다.
만나시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사이 나는 업무에 집중하려 했지만 두 분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함께하진 않지만 그 대화를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빠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지인의 목소리 역시 작아졌다.
무슨 말씀을 하시길래 그러지?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번에 큰딸이 책 냈어."
"책?? 무슨 책?"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으신 듯
"이거야. 전국 서점에 있어."
"원래 소질이 있었어?"
"몰라. 출판사에 글 써서 돌렸는데 계약하자고 했대."
"아. 그럼 정식으로 등단한 거야?"
"아니. 수필 한 권 낸 거야. 이번에 인세 받았다고 용돈도 줬어."
"오. 축하해. 큰딸이 큰일 했네."
"응. 지금 사무실에 일하는 딸이 큰딸이잖아."
아니. 남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인가.
분위기상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는 줄.
큰소리로 말씀하시다 왜 칭찬하는 내용은 소곤소곤 속닥거리듯 이야기하셔야 했나.
아빠는 칭찬에 인색한 분이다.
한 학기 장학금을 받아도 잘했다 한마디뿐이셨고,
내년에는 학비 걱정 안 하게 전학기 내내 받아야 한다고 하셨던 분이다.
그리고 지인들의 아친아 아친딸 이야기는 우리에게 상세히 전해주셨었다.
그럼 우리는 아빠도 우리 자랑하시냐고 물으면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어떻게 자랑하냐 하시며 우리 자랑은 부끄럽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기셨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었다.
아친아 아친딸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아친도 자랑하고 싶은데 자식 자랑밖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남에게 보통의 일이 나에게는 대단한 일처럼 느낀 감정을 전달하다 과장되는 거다.
그들의 실체는 절반은 진짜고 절반은 가짜라는 생각으로 다 믿지는 않았었다.
이런 아빠가 무슨 일 이래.
기대가 컸던 첫째이자 내게 지금의 내 모습에 실망도 컸을 아빠인데.
어떻게 내 자랑을 하시네.
진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상대에게 집중하라고 속닥거리듯 말씀하신 걸까.
아니면 대수롭진 않지만 한번 알려는 주고 싶으셨던 걸까.
그것도 아님 문 넘어 당사자가 있어서 들릴까 봐 목소리를 낮추신 걸까.
듣는 이 역시 왜 속닥거리며 장단을 맞춰야 하는 암묵적 룰이 있으신가.
두 분의 목소리가 잠시 후 커졌다.
조만간 연말에는 조촐하게 모임을 해보자고 하셨다.
이후 지인이 사무실을 떠나시길래 배웅해 드렸다.
좀 전에 사무실에 들어오실 때 눈인사보다 더 길게 웃으며 날 바라봐 주셨다.
아빠의 속닥거린 대화 덕분인가.
퇴근길에 치즈군에게 말해줬다.
"아빠가 내 책 나온 거 자랑을 하셨어. 처음에 계약한다고 했을 때 사기당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던 분인데 말이지."
"우리 장인어른이 자랑을 하셨어? 자기 기분 좋겠다."
"근데 그 자랑을 낮말이라고 새가 들을까 봐 아주 소곤소곤 말씀하셨어."
"무뚝뚝한 장인어른이 쑥스러우셨나 보네."
"그랬을까. 용돈을 더 많이 드렸으면 목소리 크게 말씀하셨을까."
ㅋㅋㅋㅋㅋㅋ
모처럼 퇴근길이 더 즐겁게 느껴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