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오후 6시가 된다.
공식적인 나의 업무가 다 마무리된 시점이다.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오르락내리락한 내 감정도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날이면서 내일 날씨 예보가 맑음이라면 집에 돌아와 바쁘게 움직인다.
배고픔을 잘 참지 못하지만 이럴 때 주방보다 세탁실로 제일 먼저 발을 옮긴다.
그리고 빨래통을 확인한다.
흰색 또는 유색으로 구분한 빨래, 울 샴푸로 다뤄야 할 빨래, 이불, 양말, 수건, 그리고 속옷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빨래를 세탁기에 아무 감정 없이 툭툭 넣는다.
저녁 6시~7시쯤에는 세탁기를 작동해야 9시 전에 끝날 수 있기 때문에 내 행동은 아주 빠르게 움직인다.
이후 옷을 갈아입고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치즈군을 도와준다.
저녁 식사를 하며 치즈군과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 나눈다.
걷기 운동을 할지, 동네 마실을 다녀올지, 마트 쇼핑을 할지 아니면 넷플릭스나 TV를 시청할지 또는 각자 원하는 대로 취미 생활을 할지 등등 결정하는 것이다.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집에 있으면 또는 집으로 돌아오면 잊고 있던 세탁기의 세탁 종료 알람이 들린다.
그럼 난 자동으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깨끗해진 빨래를 한 개 두 개 꺼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섬유 유연제의 향기에 취할 때도 있고, 빳빳해진 빨래에 살짝 배어 나오는 세제 향도 좋다.
그리고 건조대에 향기 좋은 빨래를 널기 시작한다.
드디어 하이라이트다.
감정 없는 세탁기의 무자비한 탈수를 이겨낸 후의 제대로 구겨진 빨래들은 우스워 보인다.
그리고 내가 웃긴 모습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겠노라 빨래의 끝자락을 야무지게 잡고 탈탈 턴다.
또는 세탁기에서 연실 두들기고 헹궈지고 탈탈 탈수된 빨래지만 아직도 붙어있을 먼지를 마지막으로 털어내는 듯이 탈탈 터는 거다.
이때 '탁탁' 터는 게 아니라 '탈탈' 터는 게 핵심이다. 탁보다는 탈이 좀 더 많이 터는 기분이랄까.
내 팔의 힘과 빨래 그리고 공기가 부딪혀 바람을 일으키며 둔탁한 소리를 내지만 이 소리에 귓속 먼지도 털어지는 것 같다.
잔뜩 구겨진 빨래가 원래의 모습으로 됐을 때 내 눈은 정화된다.
그리고 이 빨래를 건조대에 나란히 널었을 때 진정 내 하루의 감정들이 반듯하게 널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살짝 열린 베란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서늘한 밤바람이 빨래들을 살짝 흔들어줄 때 그 찬 기운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럼 나는 내게도 하루 마무리 인사를 한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오늘도 열심히 했어.' 날 토닥여준다.
학창 시절 학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대부분 빨래를 널고 계셨다.
하루를 아주 바쁘게 보내셨을 텐데 그 밤에 날 기다리면서 빨래도 널고 계셨던 거다.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오면 2층 베란다의 열린 창문으로 엄마의 빨래 터는 소리가 들렸고, 또 엄마가 사용하는 피죤의 미모사향이 은은하게 퍼져 코를 향기롭게 했다.
집으로 녹초가 되어 들어온 나는 그런 엄마 앞에서 지친 표정을 짓는 게 미안했다.
현관을 들어오면서 나는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향기 좋다~."
"오늘도 수고했어. 씻고 간식 먹어."
얼른 씻고 나와 지친 몸을 이끌고 털썩 앉은 식탁에서 엄마의 하루 마무리를 바라본다.
엄마의 하루 마무리에는 언제나 미모사향이 나는 평온한 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빨래를 하면 뭔가 마무리가 되는 것 같다.
퇴근 후 세탁을 기다리던 빨래는 마치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안정을 기다리는 내 마음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금요일 밤에는 세탁기를 돌릴 때 기분이 가장 좋다.
한주 업무로 고생한 내 마음을 싹 정리해 주는 것이다.
오늘도 밤에 베란다 불빛 아래 빨래를 널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밤공기가 점점 차갑지 않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봄밤이다.
창밖으론 늦은 퇴근시간의 차들이 촘촘히 멀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