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아름다운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에 대해
대전이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건 바로 잡지입니다. <엘르>, <쎄씨>, <보그>를 보며 유행하는 패션부터 다양한 청춘들의 면면을 배웠고 <씨네21>을 들고 다니며 영화 기자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했어요. 매달 서점의 잡지 코너에서 커버 모델들을 훑어보면 자연스레 당대 인기 스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죠. 인상적인 화보와 기사를 모은 스크랩북은 열다섯 살 중학생에게 통장보다 소중한 보물이었어요. 그러다 녹색 포털과 유튜브가 등장했고,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 원하는 룩북과 아티클을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저는 더 이상 잡지를 구매하지 않았어요. 인쇄 미디어는 그렇게 순식간에 몰락했고 잡지들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네요.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젊은 시절 영감을 받았던 잡지라는 미디어에 대한 헌사이자, 그 자체로 스크린 위에 펼쳐진 한 권의 완성된 잡지를 보는 듯한 독특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옛 프랑스의 특징들을 모은 가상의 도시 ‘앙뉘 쉬르 블라제’를 배경으로 해요. 영화 제목이자 극 중 잡지의 이름인 <프렌치 디스패치>의 종간호를 완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프렌치 디스패치의 창간인이자 편집장은 자신이 죽으면 잡지도 폐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4편의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저널리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잡지에 다양한 표현 방식이 등장하듯 컬러와 흑백 화면이 계속해서 교차하고 웨스 앤더슨 특유의 미술과 스타일이 펼쳐져요. 인물과 소품의 위치, 배경의 구도, 타이포그래피 등 잡지를 이루는 요소들이 아주 치밀하게 화면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모든 씬을 캡처해 그대로 잡지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하죠.
웨스 앤더슨은 고등학교 시절 잡지 <뉴요커>의 표지를 보고 반해서 애독자가 되었다고 해요. 엔딩 크레딧에서 그동안 발행된 프렌치 디스패치의 (가상) 커버들을 보여주는데 뉴요커와 굉장히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속 4명의 메인 기자들과 편집장의 모티브가 뉴요커에서 활약했던 실제 인물들이라네요. 웨스 앤더슨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 보면, 그에게 영화 제작이란 그토록 사랑하던 잡지를 만드는 과정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너무 좋아해서 프렌치 디스패치를 처음 봤을 때 그만한 감흥은 없었는데, 왜인지 이 영화를 볼 수록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어요. 이방인과 소수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연대, 따스한 위로가 뭉클했어요. 두 번째로 볼 때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콘크리트 걸작’이. 그다음에는 68혁명을 감각적으로 그린 (그리고 너무 애정하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나오는) ‘선언문 개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최근엔 새저랙의 단신에 빠졌어요.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도시 블라제는 새저랙의 애정이 담긴 눈을 통해 지극히 낭만적인 도시로 그려져요.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묘사하는 창작자의 역할에 대한 이 말이 기억에 남네요. 알면 알 수록 새로운 매력이 샘솟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사라져 버린, 또는 지금도 변신을 거듭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잡지들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김도훈 영화 평론가의 잡지 폐간에 대한 글이 떠올라 소개합니다. 본가에 가면 창고 어딘가에 우두커니 있을 스크랩북을 꺼내 줘야겠어요.
뉴요커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가 문을 닫았다. 창간 63주년 만의 일이다. 이미 1년 전에 디지털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매체를 계속 지탱할 만큼의 돈을 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발행인은 2018년 8월 31일 "재정적 문제로 발행을 완전히 중단한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폐간 기사들과는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 그건 폐간을 하더라도 잡지의 영속성을 지키려는 시도다. 빌리지 보이스의 마지막 직원들은 다음 세대가 계속해서 빌리지 보이스의 콘텐츠들을 볼 수 있도록 지면 전체를 아카이빙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쎄씨는? 여성중앙은?
나는 2년간 비라이센스 남성지의 디렉터로 일하며 많은 기사를 썼다. 잡지는 내가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누구도 아카이빙은 하지 않았다. 홈페이지는 사라졌다. 한국은 잡지를 그냥 없애버린다. 그리고 역사를 버린다. 수십 년이 된 잡지의 아카이브는 인류의 유산이다. 나는 잡지의 전성기가 다시 오리라 쉬이 예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많은 정보의 아카이빙이다.
잡지는 사라질 수 있다. 물성에의 매혹은 사라질 수 있다. 콘텐츠는 남아야 한다. 그것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잡지들을 휴간하고 폐간하는 콘텐츠 회사들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책임이자 긍지다.
- 김도훈 영화 평론가의 산문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