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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느낀 그 불편함, 틀린 게 아닙니다

by 유선호

그런 생각도 해봤다.


세상은 과연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는 걸 바랄까?

모두가 계좌에 1000억씩, 가지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여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오늘도 새벽부터 거리 청소를 하고,

누군가는 흙 묻은 손으로 땅을 일군다.

누군가는 한밤중 조용한 빌딩에서 청소를 하고,

누군가는 햇볕 쨍쨍한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누군가는 정류장에서 끝도 없는 버스를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고,

누군가는 고객의 짜증 섞인 말에도 웃으며 계산을 마친다.

누군가는 아이를 안고 출근길을 뛰며

누군가는 오늘도 지하 깊은 곳에서 지하철을 운행하고,

누군가는 조용한 병동에서 환자의 손을 꼭 잡아준다.

동반자는 푼돈 몇 만 원 벌어보겠다고 주식을 시작했다가 한달 일한거보다 많은 -300만 원을 잃고,

한참을 울었다. 며칠이나 그랬던 것 같다


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해내고 계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일을 폄하하려는 것이 절대 절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분들의 땀과 수고가 없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모두가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렇게 고된 일은 과연 여전히 누군가에게 고정되어 있어야 할까?

그 몫은 왜 늘 일부에게만 돌아가야 하는 걸까?


지금의 사회 구조는

어쩌면 모두가 도달하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늘 ‘거기’까지 닿지 못해야

누군가는 계속 그 위에 설 수 있으니까.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노력이 우리를 살아가게는 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 속에 우리가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은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가’보다는

‘어떻게 넓게 퍼뜨릴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한 사람의 시간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구조나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결국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이 삶의 판을 움직이게 되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같은 하루를 살면서도

다른 게임판 위에 서 있다.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규칙을 따른다.


오늘도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어떤 구조 안에 있나?

이 구조는 결국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나는 알고있는거겠지? 아니면 안다고 생각하는걸까?

그리고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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