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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Jun 18. 2019

마흔 혼여 응원기

지금이라도 혼자 떠나는 여행이 필요한 이유

남편이 어제 출국했다. 공항에서 그를 보내주고 싶었지만 나는 혼자 답사 출장이 잡혀 있었다. 그러니까, 주말에 아이들을 맡기고 우리 부부는 각자의 여행을 떠난 셈이다.

혼자서 여행을 준비하는 것에 서툰 마흔을 살짝 넘긴 남편을 도우며 이번 주 브런치 주제를 정했다.

평소와 너무 다른 그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다.

남편의 혼여를 응원하며 내가 떠났던 혼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정리해본다.



몇 년 전, 사표를 내고 시간이 나자마자 혼여를 계획했다. 그 해에는 유독 가족여행 일정도 많았고, 주말마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왔던 터라 가볍게 혼자 조용한 곳으로 다녀오고 싶었다. 그간 힘들었던 멘탈도 정리하고 자존감도 좀 회복시켜야 했기에.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템플스테이였고, 친구의 추천으로 전라도 여행 일정을 짰다. 그때는 그것이 나의 인생에 또 어떤 길을 열어줄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뚜벅이로 전라도 순천, 벌교, 보성, 제주를 일주일간 다녀올 생각이었다. 예약은 순천 선암사의 템플스테이뿐이었고, 다른 건 가서 하려고 했다. 성격상 러프하게 도시와 숙소 정도는 정하고 여행하는 사람인지라 그간의 내가 다닌 여행과는 좀 달랐다.

막상 큰 배낭을 메고(국내혼여는 트렁크보다 배낭이지!) 아이들과 인사하고 나오는데 세상에 기분이 엄청 묘했다. 뭐랄까 이제 막 어른이 된 느낌? 아니, 다시 아이가 된 느낌? 새로 산 하이힐 신고 외출하는 느낌? 약간 설레면서도 좀 무섭고 그러면서도 신나고 즐거운 뭐 그런 복잡 미묘한 기분. 

KTX에 앉고 나니 새삼 내가 혼자 여행을 다녀온 지 너무 오래된 걸 깨달았다. 아니 진짜 내가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던 20대 여행에 비해 마흔 즈음의 혼여는 생소했다. 어느새 나는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가 익숙해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어색해진 탓도 있겠다. 혼자서 잘 해내던 일들이 어느 순간 둘 혹은 셋이 함께 하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내 몸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혼자 하는 생소한 그 모든 일에 금세 익숙해지고 또 요령도 생기더라. 때론 친구가 생기기도 하고. 생소한 그것 또한 즐기면 그것이 여행의 매력이 되어준다.


우리는 늘 선택한다. 여행도 선택의 연속이다. 혼여에서의 선택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결과가 내 몫이다. 잘되도 안돼도 오롯이 나에게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다 보니 선택에 간결함이 생긴다. 나름의 방식이나 선택의 기준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메뉴는 추천을 받는다든지, 숙소는 정거장이나 역에서 몇 분 거리에 위치한 곳을 선택한다든지 등등등. 조금 잘못된 선택이면 어떤가. 이번 여행에만 영향을 미치는데 말이다.

그 실수한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글감이 되고, 음악이 되고, 화폭에 담기는 그림이 될지니, 우리 혼여에서 선택에 크게 고민하지 말자.


남편에게 구박을 하고 잔소리를 했던 부분은 바로 혼자 준비하지 않는 습관 때문이었다. 우리는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을 한 탓에 서로의 장단점과 강약점 파악이 다 끝난 사이다. 그렇다 보니 역할분담이 확실한데 특히 여행에 관해서는 많은 부분 내 몫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불만 없이 늘 잘 맡아왔으니 혼여 역시 모든 부분을 혼자서 즐겁게 준비했다. 하지만 남편은 혼자 해외로 여행을 근 이십 년 만에 떠나는데 준비할 게 너무 많아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고 다 챙겨줄 여건도 안된 터라 많은 부분 스스로 준비하여 혼여를 떠났다. 유심을 살지 로밍을 할지, 목베개를 챙길지 말지 같은 사소한 것을 두고 혼자 고민을 했다. 혼자서 준비하는 부분이 늘어날수록 여행에 대한 기대로 높아지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다. 첫 유럽여행을 자유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두 번째는 쉽게 일정을 짜고 가격비교를 하고 있더라. 처음이 어렵지 해보면 다 할 수 있다. 


나에게 마흔에 떠난 혼여는 중년의 준비운동 같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 마흔, 나를 되돌아보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주말이나 휴가 때 충분히 할 수 있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만큼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새벽 3시 반 108배를 위해 선암사의 200년 된 숙소에서 삐그덕 거리는 계단을 밟고 내려와 본 나는 그전의 나와는 무언가 달라졌다. 내가 생각한 나에게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 할 수 있다니까!' 내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이다. 그 여행에서 내가 나에게 얼마나 많이 해줬는지 모른다.

마흔은 생각보다 늙지 않았다. 아직 경험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스스로를 작은 틀 안에 가두지 말자. 

떠나자 혼자서 지금이라도.



남편은 잘 도착해서 잘 먹고 꼬인 일정에 스트레스도 좀 받다가 맛있는 커피 한잔에 다음 일정을 고민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여행이 체질이라느니 외롭다느니 감성적인 카톡 폭탄 받는 중인데 저는 그마저도 귀엽네요. 꼰대 말고 킹스맨되어 나타나 주길 간절히 바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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