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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결국 나를 강하게 한다.

by 일조일조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니체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결국 나를 강하게 한다."
짧지만 강한 이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고, 자연스레 작년 창업을 시작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창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꽤 규모 있는 SI(시스템 개발) 용역 사업 제안을 받았다. 매출에 대한 기대가 컸고, 함께할 개발자도 섭외해 두었다. RFP 분석 미팅에 참여하고, 우리가 맡게 될 영역에 대한 제안서도 직접 작성했다. 창업 첫해부터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입찰 하루 전, 주관사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번 사업, 입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 사업을 통해 2년은 안정적으로 버티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업의 운명을 내 손이 아닌 남의 손에 맡긴 셈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코파운더는 매일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고, 급하게 회사 소개서를 만들어 아는 SI회사들에 돌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문제가 잔뜩 얽힌 프로젝트를 살려달라는 요청뿐이었다. 결국,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알게 됐다. 만 39세까지는 '청년'으로 분류되어 정부 지원사업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기업, 공공기관 프로젝트도 해봤으니 예비창업패키지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아내에게 검토까지 부탁하며 사업계획서를 꼼꼼히 작성했다. 하지만 용역도 안 된 상황에서 이것마저 떨어지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간절히 임했다. 그리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 그동안 아이디어 수첩, 노트, 구글 드라이브, 일기장까지 몽땅 뒤졌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아이템을 정했다. 프론트엔드 프리랜서를 섭외해 개발 속도를 올리고, 랜딩페이지와 언론보도도 준비했다. 월 4,900원의 저렴한 요금으로 기업용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지인들은 가입만 하고 이용하지 않았고, 실제 고객은 단 한 곳, 그것도 가입만 하고 사용은 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삼재가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 느꼈다. 그래도 마지막 ‘날삼재’에는 행운이 따른다지 않은가. 코파운더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지분을 더 달라”는 요구였다. 아직 상처도 아물지 않았는데 다시 칼을 맞는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퇴사를 통보해 왔다. 나는 진심을 담아 함께하자고 붙잡았다. 비록 지금은 어려워도, 끝까지 함께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나는 속이 끓었다.
"나간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겠다."
분노와 상처를 억누르고, 이를 악물며 의지를 불태웠다.


"人無遠慮, 必有近憂" (멀리 보지 않으면 가까이서 근심이 생긴다.)
사무실 문 앞에 붙여둔 문구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가까이서 근심이 닥칠 땐, 멀리 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비전을 다시 떠올렸다. 실패를 인정했고, 부족한 나를 받아들였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실패는 때로는 쓰라리고, 고통은 깊고 오래가지만, 결국 그것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 순간, 예상치 못한 배신과 상처, 좌절과 무력감, 그 어떤 것도 나를 무너지게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더 멀리 보게 되었고,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됐다.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 있지만,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죽이지 못한 고통은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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