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항상 내가 먼저 안부를 물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그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 익숙한 건물 1층에서 만난 우리는 자연스레 그 안의 카페로 향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근에 심경의 변화가 좀 있었어요.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삶에 대한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리고 어김없이 돈 이야기까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그가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창업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원래 아이디어가 있었나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1년 전, 내가 창업을 결심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멋진 스토리, 사회를 바꾸겠다는 사명감, 거창한 비전… 그런 건 없었다. 내게 창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였고,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디어가 있어서 창업한 건 아니에요. 사업자를 먼저 등록했고, 그다음에 아이디어를 짜냈어요.”
그러고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본 인상 깊은 문장을 덧붙였다.
“인간의 몸은 생존을 위한 단백질의 그릇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생존 본능에 의지해 환경부터 바꿨던 거예요. 생존이 위협받는 조건 속에서야 진짜 본능이 깨어나니까요.”
지인은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는 아이디어가 성공의 핵심이라고 믿고 있었고, 나에게 ‘이게 괜찮은지’를 확인받고 싶어 했다. 나는 그에게 초기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점을 공유했다.
초기 아이디어는 중요하다. 그것은 창업을 결심하게 만든 불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을 시작한 순간부터, 그 아이디어는 더 이상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 샤워 중에 그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창업의 시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 들은 스타트업 강의에선 창업에 적절한 시기를 35세에서 45세 사이로 정의했다. 하지만 한 강의 참석자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올해 환갑인데 창업했습니다. 제 마음은 아직 30대인데요, 괜찮을까요?” 그 순간 강의장은 박수로 가득 찼다.
소프트웨어 협회 모임에 갔을 때였다. 정부의 한 차관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메인스트림에 못 들어오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수출을 안 해서 그래요.”
나는 물었다.
“수출을 얼마나 해야 대한민국 산업의 메인스트림이 될 수 있습니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1조 원은 되어야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의 마음속에 명확한 목표가 생겼다.
‘그래, 우리 회사가 그 1조 원 수출을 하자. 우리가 해내자.’
그날 이후, 회사의 비전은 단단해졌다. 그전까지 퍼즐처럼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졌다.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세상에 기여할 방식, 그리고 내가 견뎌야 할 이유까지도 명확해졌다.
이제 나는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마음은 더 단단해졌고, 목표는 더 커졌다.
그래서 나는 지인에게 말을 전했다.
‘창업의 시기란 없다. 창업은 시작일 뿐이고, 그 이후에 만들어가는 비전과 여정이 진짜 시기이다.’
우리는 창업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때로는 무너지기도 하며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만의 이유’를 찾는다. 그것이 창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누군가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모든 세포의 목적을 생존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비전을 찾는 것이 숙제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후에는 운에 맡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