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창업한 지 만 1년이 되었다. 창업 당시 주변의 기대는 이제 희미해졌다. 스타트업의 세계는 냉혹했다.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계획으로 끝났고, Plan A를 기대하면 Plan B가 필요해졌다. 스타트업 세 번째 도전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 가혹했다. 이제 나는 대기업 출신이 아니라, 그저 40대, 아이 둘을 둔 창업가일 뿐이었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은 많다. 일확천금을 바라고, 갑작스러운 성공을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처절하다. 직장 생활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다고 영웅인가? 혁신가인가? 아니다. 아무도 모른다. 언론 보도를 수차례 내보내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타벅스, 롯데, 삼성을 알지만, 내가 창업한 회사와 사업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얼마 전, 개업 선물로 받은 금전수 화분이 죽었다. 금전수는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하지만, 작년과 올해 내게 재물을 가져다주지 못한 금전수는 결국 시들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매주 물을 주었다. 굶겨 죽인 것이 아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 금전수가 땅에 닿을 때, 나의 자존심도 함께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의 이야기다. 수용소의 삶은 지옥과 같았다. 매일 아침 빵 한 조각으로 하루를 버텨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남았다. 책은 인간이 언제 나약해지고 무너지는지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나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던 수감자들이 가장 먼저 죽었다. 간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에도 나가지 못한 실망감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져버렸다. 빅터 프랭클은 이를 연구했고, 헛된 희망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미 해군 제독인 제임스 스톡데일이 포로 생활을 견디며 깨달은 원칙이다. 그는 "지나친 낙관주의가 오히려 실패를 초래할 수 있으며,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낙관적으로 미래를 꿈꾸되, 현실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금전적인 목표를 세운다. 언제까지 큰돈을 벌겠다, 언제 사옥을 세우겠다. 하지만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그런 목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1년 차에 접어들며 비로소 현재에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만드는 제품을 사랑하고, 우리 제품을 찾아주는 고객에게 감사하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창업은 결과가 아니다. 사업의 성공도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창업과 사업은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이며, 하루하루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 어떤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업이 실패한 걸까? 전혀 아니다. 출시 5개월 만에 100개의 기업 고객을 확보했고, 유료 고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매출이 크지는 않지만, 우리가 만든 제품을 고객이 직접 찾아 사용해주고 있다. 이 과정과 동료들과의 추억이야말로 사업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사업을 결과로 보지 않기로 했다. 사업은 내가 선택한 삶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창업했다면 결과는 뻔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통해 성장하기로 선택했기에, 나는 과정에 감사하고, 성장을 즐기려 한다. 그리고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받아들이려 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처럼, 나는 성공을 꿈꾸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작은 회사, 작은 서비스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다. 언젠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하길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처절한 하루다. 그러나 꾸준함은 의미 없는 행동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