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디지털화가 주는 문제와 에티켓
말의 품격, 언어의 온도 등 최근 소통을 다루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다. 이도 그럴 것이 소통은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여느 집단에서 자주 문제을 일으키는 요소다. 책에서는 경청, 리액션, 목소리 등 소통을 하는 데 있어 다양한 요소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우리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디지털 유목민;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굳이 만나지 않아도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 표정과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이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심지어 웃는 문구(ㅋ, ㅎ)를 써야 할지 , 어떤 이모티콘을 보낼지 고민한다. 결국 내용은 이해되지 않지만 이모티콘이나 웃는 문구로 가득 찬 문장을 보내게 된다.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가끔 새로운 자아를 나타낼때가 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두렵지만 키보드 앞에서는 누구나 워리어(전사)가 된다. 우리는 직접 말하기 어려운 내용을 텍스트로 전하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Case 1)
대학시절 내 친구는 어떤 여자 친구와 사귀고 있었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찾아와 여자 친구가 연락이 없다며 걱정을 했다. 최근 다툰 적이 있었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꽤 오랜 기간 사귀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는 것에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1주일이 지나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문자로 "헤어져"라고 온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가 그때 내뱉은 육두문자가 아직도 기억난다. 1주일간 답답했을 친구에게 그리고 이별의 상심을 덜어주기 위해 술을 한잔 사주었다.
(Case 2)
몇 달 전 우리 팀의 한 직원이 퇴사 통보를 알려왔다. 업무용 메신저를 통해 전달된 내용은 "저 퇴사합니다."라는 10글자가 안 되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하려고 메시 창을 켜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갑자기 왜 그러지?' '문제가 있는 건가?' '나만 몰랐던 내용인가?' 별별 생각이 들었지만 "잠깐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해요."라고 답장했다. 나는 그 당시 다음 미팅을 위해 자료를 작성하고 있었고 직원에게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런 내용을 단순 텍스트로만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디지털 상에서 텍스트(Text)를 전달할 수 있지만 콘텍스트(Context)는 전달할 수 없다. 내가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하는 내용이 단순 텍스트인지 아니면 콘텍스트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하기 어려운 말을 텍스트로 표현한 문장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찾아가서 눈을 마주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라. 그리고 상대방의 대답을 잘 들어주면 된다.
인간은 본디 아날로그다. 사랑, 슬픔, 두려움, 동정 등의 감정을 느낀다. 또한 뇌에는 수십억 개의 뉴런들이 아직도 과학적으로 풀어지지 않는 규칙으로 활동하고 있다. 말도 그렇다. 눈을 마주치고 내 목소리와 표정을 전달하는 모든 것이 대화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항상 만나서 대화할 수 없다. 친구, 가족, 동료들과 인터넷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고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대화 에티켓(매너)이 필요하다.
1)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 기다리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가장 큰 차이는 그 사람이 보지(듣지) 않았는데 무수히 많은 메시지를 미리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제 가는 보겠지라는 심정으로 무분별하게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를 보는 사람은 길게 쌓여있는 메시지를 보고 읽지 않을 확률이 높다. 최근 메시지 1, 2개만 확인할 것이다. 상대방이 바로 답장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급한 용건만을 물어봐야 한다. 상대방이 생각하고 대답할 시간을 주자. 하루 기다린다고 해서 세상이 종말 하는 것이 아니다.
2) 부드러운 문장으로 바꾸기
영화 트루먼쇼를 보면 주인공 트루먼에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게 말을 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트루먼만 보면 항상 웃는 얼굴로 살갑게 이야기한다. 영화와 같이 항상 만나서 이야기한다면 미소 짓는 표정으로 분위기를 더 좋게 이끌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 단순하게 텍스트만으로 부드럽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 문장을 보자.
"ㅇㅇ님 제가 저번에 부탁드린 ㅇㅇ업무 아직 시작 안 하셨습니다. 바쁘시면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애초에 내용 자체가 딱딱하지만 문장은 더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 문장을 보는 사람은 아마 내용보다는 어조에 숨이 막힐 것이다. 아래와 같이 바꿔보자.
"ㅇㅇ님 제가 저번에 ㅇㅇ업무 부탁드렸는데요. 바쁘시면 그냥 제가 진행할까요?"
조금만 바꿔주면 훨씬 더 상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직접 만나서 말해야 할 내용을 메시지로 더 강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딱딱한 텍스트는 대화방에 남아 관계를 숨 막히게 한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부드럽게 다듬어주자.
"안녕하세요."와 같은 인사에도 텍스트에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부드러운 의도로 말한 내용이 딱딱하게 전달될 수 있다. 문장의 끝에 내가 말하는 표정을 리얼하게 보여주자. 웃고 있을 때는 ^^ :) ^-^와 같이 슬플 때는 ㅠㅠ TT와 같이 말이다. 텍스트로 표현하는 이모티콘의 종류는 굉장히 많다. 일정기간 사용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날 보는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지금 기분이 별로인데 굳이 이모티콘을 써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모티콘을 보내는 비용은 들지 않는다. 아낄 필요가 없다!
3) 한 문장, 문단으로 보내기
카톡~ 카톡~ 스마트폰에서 한 번에 수십 개의 알림이 울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하고 보면 아래와 같은 메시지다.
ㅇㅇ아
오늘
밥
뭐 먹을 거야?
난
해장해야 되는데
해장국 먹을까?
해장국 먹을 건지 물어보는데 7번의 알림을 받았다. 모바일 메신저를 PC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의 메시지를 한 문장 입력하고 엔터를 입력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알림 지옥을 선물했다.
상대방에게 당신의 대화방 알림을 끄게 하고 싶지 않다면 되도록 문장, 문단으로 완성해서 보내야 한다.
뉴스 기사에서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이 '디지털 난독증'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내용을 봤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긴 글로 표현하지 못하며 정확히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간단하고 자극적인 정보만 접해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어의 맨 앞과 뒤만 정상적으로 하고 중간의 문자를 뒤집어놔도 찾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디지털 난독증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를 오랫동안 하지 못하게 하고 나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