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을 가장한
여행이 익숙하지 않던 때에는 모든 게 설레기만 했다. 공항에 가는 것, 비행기에서 내려 낯선 언어를 듣는 것,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는 것 모두. 30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했지만 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같이 어디서 잘지 고민하고, 매 끼니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는 생활에 넌더리가 날 정도다. 물론 돈이 많다면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여행의 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직업은 아무런 수입이 없는 백수.
그럼에도 취업 직전 홍콩에 간 것은 기분 전화보다는 '도망'에 가까웠다. 난 매일 아침 9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한 장소에 갇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중국에서 일하는 누나가 홍콩 여행에 합류했다. 이미 두 번이나 온 홍콩이었지만 누나와 함께하니 보이는 게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홍콩은 근교에 산과 바다가 많고 해가 지면 이국적인 간판 아래 서서 술을 마시는 외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누나와 함께한 홍콩은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쇼핑몰 같았다. 이렇게 많은 명품숍들이 어떻게 혼자 여행할 때는 보이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아, 참고로 우리 누나는 명품을 좋아한다. 누나 덕분에 평생 관심에 없던 명품숍에도 많이 들어가 봤다. 내 눈에는 모든 게 비쌌지만 누나 눈에는 모든 게 저렴했다. 같은 제품도 홍콩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한다. 누나는 이야기했다. 여기서 신발을 사서 인터넷에 팔기만 해도 1-20만 원은 남을 것이라고.
취업을 하면 하기 싫은 일을 한 대가로 한 달에 200만 원 언저리의 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명품을 사서 한국에 되팔면? 하루에 한 개만 팔려도 직장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한 금액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심지어 자유시간도 훨씬 많지 않은가!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설레어 잠도 안 올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