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여행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자전거를 타고 남아메리카 횡단하고 엄마와 여행하는 등 다양한 책들이 많았지만 나에게는 무전여행 관련 책들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리고 "뭐야, 이거 뭐 조금 덜먹고 덜자면서 도움을 받으면 돈 없이도 여행하겠는데?"라는 군인스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운이 좋게(?) 여자 친구도 없어 조금씩 남는 월급으로 비행기 값이라도 모아 전역을 할 계획으로 매달 5만 원씩 저금을 하니 전역을 할 때는 100만 원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전역을 하고 나니 모든 게 현실이었다. 영어도 못하는데 괜히 100만 원만 들고 여행을 시작했다가는 일주일 내내 쫄쫄 굶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국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와 복학시기까지 놓쳐서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만 하는 것보다 복학해서 학점이나 메꿔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복학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지금 Brisbane에 있는 워홀계의 삼성이라고 불리는 닭고기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일주일에 호주 돈으로 1000달러를 벌고 있다." 그 말을 듣고 난 다음날 바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닭고기 공장이 있는 Brisbane까지는 가고 싶었지만 Brisbane에서 2시간 떨어진 Goldcoast행 비행기표가 23만 원 밖에 하지 않아 Goldcoast로 입국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호주에서 일하다 보면 영어도 자동으로 늘고 4개월간 닭고기 공장에서 떼돈을 벌어 유창한 영어를 쓰며 6개월간 남미와 유럽을 여행한 후 돌아와야지!"라는 생각으로 떠날 준비를 했고,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돈이 부족하면 쓰라고 주시던 돈은 "돈 벌러 호주 가는데 굳이 큰돈을 들고 갈 필요가 있냐고" 이야기하며 거절하고 100만 원만 가지고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군대에서 세계여행책과 무전여행책은 많이 읽었지만 사실 외국에 혼자 나가본 적은 없었다. 해외여행은 군대 가기 전 친구와 일주일을 계획하고 베트남에 가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첫날에 핸드폰과 현금을 도둑맞고 3일 만에 돌아왔었다.
그래도 글로 배운 여행 덕분에 처음 하는 체크인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던 만큼 실수가 잇따랐다. 내가 싸서 좋다고 산 표에는 30시간 비행시간 동안 기내식은커녕 물 한잔도 돈 주고 사 먹어야 했고 심지어 수화물도 포함돼있지 않았다. 기내에 가방을 2개까지 가지고 들어갈 수 있지만 한 가방이 7KG을 초과할 수는 없단다. 하지만 나의 집과 같은 배낭의 무게는 18KG가 훌쩍 넘었다. 당장 체크인을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2개의 선택권이 있었다. 공항에서 수화물을 신청을 하거나 배낭에 들어있는 모든 옷을 껴입고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것.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은 100만 원이 전부였다. 호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승무원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후 배낭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가 반바지 2개 위에 청바지 그리고 그위에 운동복 바지까지 껴입었고 10월이지만 겨울잠바까지 몸에 걸친 후 작아진 배낭으로 다시 체크인을 시도했다. 꼴은 우습지만 배낭은 전보다 훨씬 가벼웠다. 하지만 18KG이 넘는 배낭을 7KG으로 줄이는 건 힘들었다. 처음부터 나의 체크인 과정을 함께해온 승무원은 다시 배낭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려던 나를 멈춰 세우고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체크인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조금 구차하긴 하지만 무전여행을 계획할 때 구차해질 각오는 하고 있었다.
체크인이 끝나고 이젠 비행기만 타면 호주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문제가 곧바로 터졌다. 바지를 4개 입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나를 보안 검색 요원이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유를 설명해도 믿지 않았다. 대화의 진전이 없으니 검색 요원은 나의 여권을 빼앗고 나를 자기 동료가 기다리고 있는 독방으로 끌고 갔다. 난 계속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독방 안이라고 해서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보안 요원은 똑같은 질물을 나에게 계속했고 나는 똑같은 답변을 계속해야만 했다. 하지만 다행히 나의 가방을 체크인해준 승무원이 내대신 내가 모든 옷을 껴 입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난 독방에서 탈출해 호주로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