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타고 들어가면 좋은 한 가지 이유는 샬린이 저녁을 해놓고 기다리고 와인을 좋아하는 월리가 저녁과 함께 와인 한두 잔을 권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 기분이 좋으면 아껴두었던 위스키를 꺼내 마시기도 했다.
그냥 저녁 한 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샬린은 요리를 정말 잘했다. 그리고 호주 생활을 하며 15 키 이상이 빠진 상태고 캐나다 환율이 호주보다 쎄 점심으로는 학원 근처에서 햄버거나 피자밖에 먹지 않아 기회가 있을 때 제대로 끼니를 때우는 건 중요한 과제였다.
호주에서 9개월간 영어를 쓰며 생활했다고 하더라도 호주에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호주인보다는 나와 같이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남미, 유럽인들과 어울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샬린과 월리와 대화하기 힘들었다. 분명 나는 영어를 하는데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호주에서 친구들이 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네가 영어를 나보다 잘한다고 치더라도 너 영어도 완벽한 게 아니니, 네가 못 알아듣는 건 내 잘못이 아닌 우리의 잘못이다."라는 핑계를 대고는 했다. 하지만 샬린과 월리에게는 그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샬린은 토요일이면 나를 수영장에 데려가 수영을 알려주고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면 차를 타고 나가 섬 구경을 시켜줬다. 호주에서와 같이 주말이라고 친구 집에 모여서 굳이 술을 마실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호주와 같은 생활을 하고 싶었으면 물가도 싸고 친구들도 있는 호주에 남았어야지 굳이 캐나다까지 와서 호주를 그리워하는 건 멍청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학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샬린과 월리와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영어가 늘은 건지 그들이 내 발음에 익숙해진 건지는 몰라도 내가 하는 말도 더 쉽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월리는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내 또래의 캐나다인들과도 어울려 보라며 월요일마다 빅토리아 대학교에 있는 대외 활동을 추천해 주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는 빅토리아 대학생이지만 낯만 두껍다면 나도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언어였다. 내 또래의 캐나다인이 쓰는 영어는 확실히 샬린과 월리의 영어와는 달랐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도 알아듣지 못하고 나에게 질문하지 않기를 바라며 알아들은 척 미소 지으며 앉아 있는 게 다였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내 또래의 캐나다인 친구들을 사귀고 봉사활동도 같이 하고 대외 활동과 관련된 크고 작은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호주 같은 캐나다 생활이 아니라 캐나다만의 생활 그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