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굿바이 빅토리아

by 채리

캐나다서의 3개월간의 생활은 하루하루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호주와 달랐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지는 안았지만 남의 나라에서 우리나라 같이 정해진 생활 패턴을 가지고 산다는 건 술 마시는 것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월리 덕분에 남의 나라에서 돈걱정 없이 살지만 내가 월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한국 요리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음식들을 인터넷을 보며 처음으로 해봤다. 처음이라고는 하지만 내 음식이라 그런지 내가 먹기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월리와 샬린은 내가 요리를 한번 해주고 나면 사진을 찍어 그 주 내내 자기가 만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니며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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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 빅토리아에서 살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그 긴 시간 동안 뭘 했는지 궁금해한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월리 집에 막내아들로 3개월 월동 안 빅토리아에서 살았던 것뿐이다.

뒷마당에 나무가 태풍에 쓰러지면 월리를 대신해서 장작을 패고 뒤뜰을 다시 가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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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샬린이 봉사활동을 하는 Search and rescue(산속에 조난자를 구출하는 훈련) 실습에 나가 군대에서 배운 생존술을 알려준곤했다. 여담이지만 사실 search and rescue 실습은 한번밖에 가지 못했다. 실습 강사인 샬리은 내가 군대에서 배운 무언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기대했지만 다른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모닦불을 만들 때 나는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다며 그냥 비닐봉지를 덮고 잤다. 사실 그게 내가 2년간 군대에서 배운 생존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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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활절에는 친인척을 포함해 6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는 가족여행에 따라가기도 하고 할러윈 데이에는 샬린이 나를 위해 사온 호박을 조각하는 등 혼자 살았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활을 하며 3개월을 캐나다인 처럼 살았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 덕분에 갔던 친구 부모님 집이지만 이제는 그 친구보다 친구의 부모님과 훨씬 더 친한 사이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빅토리아를 떠날 시간이 됐다.

아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사는게 걱정돼 캐나다에 도착 서도 갈까 말까 고민하던 빅토리아였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며 작별 인사를 하고 빅토리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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