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있을 때 이야기다.
여행책을 읽으며 무전여행을 꿈꾸고 이등병 때부터 모은 100만 원을 들고 전역했지만 현실이 되니 괜히 이대로 나갔다가는 일주일 내내 쫄쫄 굶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귀국해 복학 시즌 놓치고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복학하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돼 여행을 포기하고 복학 준비를 할 때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를 가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난 지금 닭고기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100만 원 정도씩 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고 3주 후에 한국을 떠났다.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호주에서 낳고 자란 5살짜리 꼬마들 보다는 똑똑하니깐 많이 듣고 많이 말하면 영어가 자동으로 늘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한국인을 피하고 일이 끝나면 교회나 도서관에서 해주는 무료 영어클래스를 주말에도 꼬박 챙겨 나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어는 처음보다 많이 늘었지만 어디 가서 영어 잘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실력은 되지 않았다.
한국을 떠날 때 내 계획은 4개월을 일하고 3개월 남미, 3개월 유럽 여행 후 귀국이었다. 그런데 호주 생활도 만족스럽고 영어공부도 더 하고 싶어서 10개월이던 계획을 2년으로 늘리고 공장에서 2달 더 일했다.
공장일이 끝난 후 영어공부를 하러 누사로 향했다. 6개월간 고생했으니 학원이 시작하기 전에 새로 이사한 동네에 집도 찾고 여행도 할 계획으로 누사에 있는 호스텔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누사가 정말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작은 바닷가 마을이라 일주일씩 머무르는 여행객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호스텔 스텝들과 가까워졌다.
호스텔 안에 바가 있었기 때문에 방안에서 음주는 금지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호스텔 스텝들이 방을 순찰 돌며 술을 압수했고 그 술을 들고 스텦방으로 돌아가 자기들끼리 마셨다. 그리고 난 항상 초대받았다. 내가 일주일 동안 얻어먹은 술과 안주값을 합치면 숙박비 이상이었을게 확실하다.
Bar에서는 매일 같이 다른 콘셉트의 파티가 있었다. 그리고 Lady's day라고 여자들에게는 공짜술을 한 병씩 나눠주었다. 호스텔에서 일하던 남자 스텝들은 자기 스스로를 꾸몄고 여자 스텦들은 함께 가자며 나를 꾸며주었다.
여자로 입장해 공짜술을 얻어먹을 수 있었지만 복장 때문에 남들에게 등 떠밀려 스테이지에 올라가 춤을 춰야만 했고 난 생각보다 섹시해 또 술을 얻어먹었다.
일후일 후 호스텔을 나올 때 호스텔 사람들이 제안했다. 돈은 못줘도 무료 숙박과 먹고도 남을 술을 줄 수 있단다. 하지만 난 누사에 공부를 하러 갔기 때문에 아쉽지만 호스텔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