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리아는 보고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Zipaquira에 살고 있었다. 시파키라는 소금 광산으로 유명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소금 광산을 제외하면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하지만 나에겐 모든 게 다 흥미로웠다. 지난 일 년간 소위 이야기하는 선진국들을 여행하다 보니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에 질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여행은 TV나 인터넷으로 미리 봤던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 파킬라의 모든 것은 새로웠다. 갈색빛의 건물과 주황빛 지붕 그리고 열대 나무들. 북미와는 확실히 달랐고 오히려 유럽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유럽보다 훨씬 생기 있었다.
페루의 마추픽추,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이 정도만 알고 남미에 왔다. 안드리아가 시파키라에 살지 않았다면 시파키라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파키라 소금 광산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이라고 네이버가 이야기한다.
산 안으로 180m가량 들어간 곳에 성당, 세례를 주는 분수, 설교단 등을 갖춘 교회라고 한다. 그리고 산이 점점 내려앉고 있어 언제 관광객의 출입을 막을지 모른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콜롬비아 친구에게 춤을 잘 추냐고 물으니 "나, 콜롬비아인이야"라고 대답하며 그런 질문을 듣는 것 자체를 기분 나빠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마치 한국인에게 "너 한국어 할 수 있어?"라고 묻는 것과 같이 멍청한 질문이라고 덧 붙였다. 그리 기분 좋은 대답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 친구는 춤을 정말 잘 췄다.
그 친구뿐만 아니다. 콜롬비아 사람들은 흥이 넘쳤다. 그리고 어디서든 춤을 췄다. 누군가가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그곳은 무도회장이 됐고 음악이 끝나면 조금 전까지 춤을 추던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나도 춤을 배워야만 했다. 안드리아는 버스정류장, 술집 상관없이 음악이 나오면 춤을 췄고 옆에 있는 나는 안드리아의 춤 파트너가 돼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안드리아가 시파키라에서 보고타로 이사 가는 날이었다. 안드리아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이사량이 적지 않았고 이사 가는 집은 3층짜리 주택이었다. 그런데 이삿날이 되자 짐꾼이 없는 이삿짐 트럭이 한대가 왔고 그 동네의 안드리아 친구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사를 도왔다. 심지어 지나가는 동네 주민이 이사하는 모습을 보고 들어와 돕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서 이사를 도와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한다며 한 명도 안 올게 뻔하다. 그런데 시파키라에서 이사를 도운 몇 명은 한 시간이나 떨어진 보고타까지 와 새집에 짐 정리를 하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더 이상 콜롬비아가 위험하다는 선입견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타에 오니 안드리아의 걱정이 늘었다.
소매치기가 많다며 새해 불꽃놀이를 보러 나가지 않았고 길을 걷다가 우범지역이 나오면 짧은 거리여도 꼭 택시를 탔다.
콜롬비아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 밖에 나간 날이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리라 약속했지만 길을 잃어 늦게 돌아온 나를 기다리며 안드리아는 울고 있었다. 내가 납치당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정글 지역에서는 반군이 출몰하고 관광객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거나 마을의 어린이들을 납치해 테러리스트로 키운다고 한다.
그런데 콜롬비아 사람들은 나에게는 누구보다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안드리아가 집에서 울고 있을 때 나는 길을 묻고 있었다. 하지만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안내원은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겠다며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자 바디 랭귀지와 스페인어를 섞어 나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행인이 하나둘 모여들어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설명해 줬다. 아무도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10명이 제각기 다르게 손짓 발짓을 하며 열을 올리며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해서 설명해줬고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내가 보고타를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안드리아는 걱정을 했다. 메데진행 버스를 기다리며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는 먹지 말고 아무나 따라가지 말라는 등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줄 법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안드리아와 작별인사를 하고 올라탄 야간 버스에서 옆에 앉은 콜롬비아인이 주는 맥주를 받아 마셨다. 사실 이번에는 혹시 맥주에 수면제 같은 약을 탄게 아닌가 걱정을 했지만 아니었다.
처음 보는 콜롬비아인이 주는 공짜 맥주를 세 캔이나 얻어 마신 나는 장거리 야간 버스에서 내 집 마냥 잘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