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메데진에서 만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by 채리

내 남미 여행의 시작을 함께 했던 엄마와 같은 아드리아의 품을 떠났다.


보고타에 있는 3주간 안드리아가 항상 내 옆에 있어준 덕분에 스페인어를 하지 못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결과 스페인어를 배워야 된다는 경각심도 없어 3주간 내가 배운 스페인어는 '고마워, 천만해, 이거 얼마야?, 너무 비싸' 이렇게 4 단어가 전부였다.

보고타를 떠나 도착한 메데진에는 호주에서 만난 조세라는 친구가 있었다. 호주에서 일을 하며 만난 조세에게 개같이 일해 세계여행을 할 거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조세는 메데진에 꼭 오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내가 메데진에 도착했을 때 조세는 미국에 가 있어 자신의 삼촌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지만 삼촌은 영어를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스페인어는 아까 말한 네 단어가 전부이다. 자칫 방값을 아끼기 위해 조세의 삼촌의 집에 가면 말 한디 통하지 않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만 봐야 할 것 같아 카우치서핑으로 호스트를 구했다.

DSCN0742.JPG 이중 한명이 조세다.



남미의 첫 호스트의 이름도 조세였다. 사실 안드리아가 소개시켜준 친구 중 한 명의 이름도 조세였고 나중에 에콰도르를 여행하며 또 한 명의 조세를 만났다. 그렇다. 기독교가 국교인 남미는 조세라는 이름의 남자가 많다.

조세는 게임 개발자이고 필리핀, 터키 그리고 한국에서 일을 했었지만 지금은 콜롬비아에서는 백수라고 했다. 안타가운 사실이지만 경제가 좋지 않은 콜롬비아에서는 자신과 같은 고학 격의 경력자를 필요로 하는 직업의 수요가 적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해외 취업을 준비하며 돈을 받고 개를 돌 봐준다고 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마저도 녹록지 않아 1년이 넘게 무직 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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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에서 만난 호세> <에콰도르에서 만난 호세>



거기까지 알고 메데진에 도착했다. 이제 곧 브라질 쌈바 축제가 시작할 때라 메데진을 여행 후 곧바로 브라질로 향할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들에게 쌈바 축제 때 맞춰 브라질에 갈 테니 기다리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미 이야기도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브라질을 가는 비행기는 브라질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보다 비쌌다. 남미에서는 과일과 음식 같은 식료품은 말도 안 되게 싸다. 심지어 바나나를 돈을 받지 않고 팁을 놓고 알아서 가져가라고 꺼내놓은 과일가게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이키 시발, 옷 같은 기성품들은 환율이 훨씬 높아도 미국에서 사는 게 더 저렴하다. 물가가 싼 남미에 도착하면 구멍난 신발을 버리고 새로 살 계획은 무너져 버리고 남미를 여행하는 6개월 내내 난 구멍난 신발을 신고 다녔다.


DSCN6633.JPG 캐나다를 떠나며 한번 꿰맸었다.


쌈바 축제 하나 보기 위해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그런데 이미 시애틀에서 L.A를 가는, 미국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38시간짜리 버스를 이미 타본 나였다. 지도를 보니 콜롬비아에서 브라질의 거리도 그와 비슷해 보였다. 30만 원 정도인 비행 비표에 비해 10만 원 정도로 버스비는 훨씬 저렴했다. 그런데 문제는 7일이 걸린다고 한다. 정확히 몇 시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도 없이 7일째에 브라질에 도착한단다. 그리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정글지역을 통과해 달리는 버스라 굉장히 위험하다고 한다(그전 편에서 콜롬비아의 정글에는 여행객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반군들이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쌈바 축제의 꿈을 접고 느릿느릿 호세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은 호세는 내가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버스정류장 앞에서 자기가 돌봐주고 있는 개들을 데리고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도 넘게 늦었지만 화내지 않는다. 남미 사람의 특징이다. 그 대신 자기들도 자주 늦는다. 브라질에서 코카콜라를 다닌다던 친구는 미국계 기업이지만 30분 정도는 늦어도 큰 상관이 없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교수님도 수업시간에 삼십 분씩 늦는단다. 알면 알수록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대륙이다.


DSCN6533.JPG 호세의 사진은 아니지만 호세도 이정도로 개를 많이 데리고 다녔다.


괜찮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기분 좋게 밥을 샀다. 지난 일 년간 호주, 캐나다, 미국에서 비슷비슷한 싸구려 양식에 질릴 대로 질려있던 나에게 콜롬비아 음식은 집을 떠나고 접한 최고의 음식이었다. 우리와 같이 쌀이랑 기름진 튀김음식을 많이 먹어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 그리고 양도 많고 무엇보다도 저렴하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냥 나는 콜롬비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중에 만난 독이 친구에겐 사람들은 독일 맥주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하지만 난 콜롬비아 맥주가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니깐.


조세가 1년 넘게 구직생활을 한건 정말로 아쉬운 일이지만 솔직히 나에겐 잘된 일이다. 메데진에 있는 내내 조세는 나와 동행해 주었고 나에게는 다시 한번 통역가가 생겼다.

안드리아가 유별나다고 생각했지만 조세도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조세와 함께 동물원에 가는 길이였다. 조세는 헬맷을 쓰고 오토바이에 앉아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아까부터 지켜봐 왔는데 저 사람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한번 더 이상한 기류를 느끼면 흩어져서 걷다가 동물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처음 가는 동물원을 혼자 걸어가게 됐다. 물론 아무 일 없었다. 하지만 위험한 나라는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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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인만큼 혼나 메데진을 구경하고 싶었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호세는 8시에 파티가 시작하니 늦지 않게 오라 했다. 그런데 콜롬비아에 온 지 이미 한 달이 다 된 나는 알고 있다. 8시라고 이야기했지만 파티는 9시는 다 돼서야 시작할 것이라는 걸. 그들의 문화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늦었다.

그런데 호세는 콜롬비아 친구들이 늦을 거라는 걸 알아 파티가 7시에 시작된다고 이야기해놨다. 그리고 호세 친구들 중 한 명은 한국에서 선박 엔지니어로 일을 했고 한국인들이 비교적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을 알아 친구들을 데리고 호세가 말한 7시에 맞춰서 도착해있었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제시간에 올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그들이 콜롬비아인들이기 때문에 늦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콜롬비아인들이 한국인을 2시간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파티가 시작됐다.


콜롬비아인이다. 춤이 빠질 수가 없다. 안드리아와 함께 지내며 춤을 배웠지만 그들 눈에 찰리가 만무했고 술이 취한 그들은 나에게 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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