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다시 만난 안드리아

by 채리

내가 살던 동네에는 지하철이 없었고 20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탔다. 노량진에서 출발한 지하철은 한 시간이 넘도록 목적지인 인천에 도착하지 않았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할 때 지하철은 성균관대학교역을 지나 수원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길을 잘 잃는다.


DSCN0027.JPG 서울에서 수원도 못 찾아가던 내가 이젠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


하루 빨리 돌아와서 졸업해라

이런 내가 일 년간 호주, 하와이, 캐나다 그리고 미국에 이어 남아프리카를 여행한다고 하니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사실 나도 걱정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100만 원으로 시작한 여행이고 이미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나는 많은 경험을 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뿐만 아니라 호주와 캐나다에서 각각 2개월, 3개월 어학연수를 했고 호주를 떠나기 전 여행에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챙겨 오지 않은 노트북과카메라도 구입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겨도

목숨만 가지고 돌아온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콜롬비아에 입국하는 순간 에콰도르, 페루 등의 다른 남아프리카 국가들의 여행은 버스만 타면 가능할 만큼 쉬워지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평생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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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없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에서 중앙아시아를 뛰어넘고 남아프리카 향한 이유는 캐나다에서 만난 콜롬비아 친구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초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이 돼서야 보고타 공항에 도착했다. 차가 없어 택시를 타고 데리러 온다는 친구의 호의를 사양하고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지난 일 년간 비행기를 총 7번 탔고 그중 2개의 비행기를 놓쳐 다음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노숙한 것을 합치면 총 10일이나 됐다.





여담이지만


내 경험상 노숙을 하기 가장 좋은 공항은 밴쿠버 공항이다. 물론 저가항공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마일리지도 쌓이지 않고 라운지 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한다. 보통의 공항에서 밤을 새우기 위해서는 공항경찰에게 예약 내용을 확인시켜주고 의자에 눕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앉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체로 하룻밤을 보낸다.

하지만 밴쿠버 공항은 나는 손님이고 공항의 모든 시설을 사용할 권리가 있으니 어디서든 잠을 자도 된다고 허락했고 신이난 나는 information desk뒤에 몸을 숨기고 침낭을 피고 잠을 잤고 내 집 마냥 숙면을 취한 후 다음날 아침 10시가 다 돼서 알람도 없이 일어났다.






위험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쿨한 척 무시하고 온 콜롬비아지만 사실 난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해가 저물고 공항 밖으로 나가면 덩치가 산만한 남자들이 주변에 붙어 짐이 무거워 보인다며 뺏다시피 들어주고 결과적으로는 뺏기게 된다', '택시도 함부로 타지 말라' 등 그간 들어왔던 이야기가 생각났고, 다음날 친구가 올 때까지 공항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만나 캐나다를 떠나며 자연스럽게 헤어졌던 안드리아를 콜롬비아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드리아는 콜롬비아에서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나에게 말해줬다.

간단하게 말하면 죽고 싶지 않으면 콜롬비아에서는 까불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주변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지만 콜롬비아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 친구가 직접 해주는 것과 임팩트는 달랐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함께 놀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걱정하는 안드리아에게 주머니에 총이 있는 시늉을 하며 걱정 말라고 누군가가 칼을 들고 나타나면 내가 총을 꺼내겠다고 이야기하니 안드리아는 칼을 맞고 싶은 게 아니면 첫날 공항에서 나에게 했던 말을 잊지 말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고 배울 생각도 없었다. 내가 호주와 캐나다에서 영어를 공부한 목적은 소위 말하는 스펙보다는 여행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였고 그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는 right와 lift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흔했고 심지어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인 안드리아의 엄마도 영어를 하지 못했다.



아직도 처음 배운 콜롬비아 어가 기억이 난다. 안드리아는 내가 누가 봐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무엇을 사던 무조건 "Cuánto cuesta(너무 비싸)"라고 이야기하라 했고 나중에는 내 지갑을 직접 관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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