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호주에서의 백수생활 3

미리 알았더라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by 채리

둘 다 싫었다. 식당에 들어가 무릎 꿇고 제발 일을 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게, 한국을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자존심이 덜 상할 것이다. 다른 선택권이 없으니 드디어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영어로 통째로 외워 이미 한번 찾아갔던 식당들을 다시 찾아갔다.


“안녕? 나 기억해? 사람 필요할 때 연락 주기로 했는데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아서 다시 찾아왔어! 혹시 내 이력서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깐 다시 주고 갈게. 사람 필요하면 꼭 연락 줘!”


모든 일은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다음날, 이미 두 번이나 찾아간 곳을 일 부러 다시 찾아갔다. 더욱 뻔뻔한 미소와 함께. 그리고 전날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대사와 이력서를 다시 건넸다. 식당 사람들도 내가 쉽게 포기할 놈이 아니란 걸 눈치챘을 것이다.


드디어 6시에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모든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Pardon me?’라는 소리가 나 오는 순간 어렵게 잡은 기회가 수포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이는 나 스스로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꼴이라는 걸 잘 알 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알아들은 척했다.


집으로 돌아와 하우스메이트들과 비상회의를 열었다. 6시에 인터뷰가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오늘을 위해 고이 간직해 두었던 유일한 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식당에 도착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질문 대신에 곧바로 앞치마를 받았다. 얼떨결에 일을 시작했다.


나는 내가 타지에서 접시를 닦으며 행복을 느끼는 날이 올 거라는 상상은 꿈에서도 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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