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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리 Aug 28. 2019

나에게 워킹홀리데이란?

100만 원을 들고 한국을 떠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고 이야기하면 주변에서는 내가 엄청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도전정신이란 용기보다는 무모함 혹은 단순함을 뜻한다. 단언하지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자세히 찾아보았다면 나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뭐?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일주일에 100만 원을 번다고?' 딱 이 정도 생각뿐이었다. 3주 걸렸다. 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을 알고 출국하기까지. 그리고 3일 걸렸다. 내가 호주땅에서 그리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기 까지.


전 재산이었던 100만 원은 2주 만에 다 떨어져 버렸다. 사치를 부렸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남의 나라에서는 가만히 앉아 숨을 쉬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난 너무나도 당연한 그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었다. 일부러 마트가 닫을 시간에 찾아가 폐기 직전의 음식을 찾아 먹고, 구석에 침대를 둔 거실에서 개와 함께 지내는 신세가 됐다. 이게 내가 맞닥뜨린 '워킹홀리데이'라는 달콤한 표현의 현실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을 6개월간 했다.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살아있는 닭을 거꾸로 매다는 일. 일은 더럽고 힘들었지만 돈은 많이 벌었다. 6개월 수입만 놓고 봤을 때 호주 워홀러 중 수입 상위 1%라는 이야기를 세무사에게 들을 정도로.


워킹홀리데이는 나에게 약간의 트라우마(가끔 파란불이 켜진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면 공장에서 닭을 매달던 순간이 섬뜩하게 떠오르기도 한다.)를 남겼지만 얻은 게 훨씬 많다.

1. 직접 번 돈으로 호주와 캐나다에서 각각 3개월씩 어학연수

2. 더 이상 가고 싶은 나라가 없을 때까지 세계여행

3. 복학 후 한 학기 간 사용할 용돈


군생활보다 힘들었던 워킹홀리데이였지만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나에게 가장 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역시 워킹홀리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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