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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리 Sep 02. 2019

내가 미대에 간 이유

다들 어렸을 때 예체능 학원을 하나씩은 다녀보지 않았는가. 결혼하기 전 피아노를 가르쳤던 엄마 덕분에 난 피아노 학원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포기. 내가 아닌 엄마가, 배우기를 아닌 가르치기를. 

'음악적 재능 꽝'

태권도 학원은 딱 2달 다녔다. 옆 구르기를 마스터하기보다는 포기하기를 택하며. 어렸을 때 난 뚱뚱했기 때문에 태권도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을 잘하지 못했다. 아니, 싫어했다. 살면서 축구를 단 한 번도 안 해봤을 정도로. 군대에서는 어떻게 했냐고? 군대에서도 안 했다. 축구를 하지 않는다고 먹는 욕이 경기를 잘 못 뛰어 두고두고 먹는 욕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에.

'체육적 재능 꽝'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게 그림이다. 그림 그리기는 곧잘 헸다. 어디까지나 '다른 종목에 비해'. 20살이 될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내게 그림은 '당연한'것으로 여겨졌다. 어제 그렸으니 오늘 그리고, 오늘 그렸으니 내일도 그리게 될.


20살 때 갑자기 그림에 회의감을 갖게 된 이유?

대학교에 떨어졌다. 원하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수능성적으로 1차 평가를 받은 후 그림으로 2차 평가를 받아야 했다. 10년 넘게 그림을 그린 난 2차에서 떨어졌다. 나도 눈이 있으니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 잘 그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재수생활은 그 자신감을 빼앗아 가버렸다. 난 포기가 빠르다. 안 되는 걸 잘하게 만드는 것보다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드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림은 그게 안 되더라. 오랜 기간 배워온 게 아까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게 미대 진학은 오래전부터 정해진 '진로'였고 그것 말고는 생각해 본 게 없었다. 미대는 수리 성적을 보지 않는다. 수리 공부를 포기한 지 오래된 내가 미대 진학마저 포기한다면 재수를 해도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없었다. 그 모든 걸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그게 내가 미대에 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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