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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리 Oct 04. 2019

나의 출간기 1

일기장을 가장한

책을 한 권 냈다. 제목은 '돈보다 시간이 많아서 다행이야'. 책을 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한 번 내보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군대에서 우연히 읽게 된 여행 에세이 덕분에 무전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비슷한 부류의 책을 읽을수록 저자들이 대단해 보이기보다는 '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딱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엄청 적극적이다. 가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작가에게 연락해 어떻게든 만나야 직성이 풀렸다. 작가들을 만날수록 '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은 강해졌다.

그래서 전역 후 곧장 무전여행을 떠났냐고? 군대는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닌 꿈을 지켜준 울타리였다. 막상 전역을 하니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무전여행이 불가능한 갖가지 핑계를 찾으며 어영부영 복학 준비를 했다.

운이 좋았다. 우연히 연락이 닿은 친구 덕분에 호주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전여행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었다. (100만 원을 가지고 한국을 떠났으니 완전한 무전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세아니아, 북미, 남미를 거쳐 유럽에 도착할 때까지 출간에 대한 꿈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영국에서 만난 대학교 후배가 가슴 한편에 묻혀 먼지 쌓여 있던 꿈에 불을 지펴주었다.

"오빠도 인터넷에 글 좀 써봐. 내 친구는 오빠보다 여행도 조금 했는데 한국에서 벌써 두 번째 책 쓴다는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브런치에 가입하고, 페이스북 여행 커뮤니티에 사진을 몇 장 올렸다. 난 휴대폰 데이터 없이 여행을 했다. SNS도 잘하지 않고 와이파이가 잡히면 지도를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전날에 올린 사진 몇 장이 하루 사이에 1,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눌려 있었다. 사람에 따라 '그게 별거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겐 '별거 이상'이었다.

잠깐은 재미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응원을 받고,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팔로워가 몇십만 명씩 있는 여행 페이지에서 자신들의 페이지에도 글을 올려달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재미가 얼마 가지 않았다. 여행을 하며 포스팅을 하는 게 아니라 포스팅을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게 되어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난 '좋아요'에 집착을 했다. 시차를 고려해 사진을 올리고 잠에 들면 중간중간 일어나 '좋아요'가 몇 개 눌렸나 확인을 했고, 여행 도중에도 일부러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좋아요' 개수를 확인하기 위해. 약간의 팔로워가 생기자 개인 타임라인에도 공인이 된 것처럼 글을 썼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었다면 출간이 더 쉬워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책도 더 많이 팔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그게 성격에 안 맞더라. 여행 페이지에 포스팅하는 것을 멈추고 개인 타임라인에는 팔로우가 끊기던 말던 신경 쓰지 않고 하던 대로 반말로 글을 썼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젓기는커녕 배에서 내려 버렸다. 



출간은 어떻게 했냐고? 말하지 않았는가, 난 엄청 적극적이라고. 네이버에서 검색 가능한 모든 출판사에 투고를 할 작정으로 100통이 넘는 메일을 보냈을 즈음 마음에 드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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