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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리 Oct 05. 2019

나의 출간기 2

주변에 책을 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투고 과정부터 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친구는 이야기했다. 출간 과정에 출판사의 색이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초고를 완성해 투고할 필요가 없다고. 난 친구의 말을 믿었다. 목차와 30쪽 안팎의 짧은 글만을 출판사들에게 보냈다. 친구와 나의 차이점은 난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데만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 사이 초고를 완성해 버렸다. 아마 초고를 완성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투고만 했다면 영영 출간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초고가 완성되니 원고에 관심을 갖는 출판사가 많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처우였다. 미팅을 하자고 회사에 불러 놓고 안부와 직업만 묻다가 돌려보낸 출판사, 책을 내줄 테니 출판 비용을 부담하라는 출판사, 출판 비용을 부담할 필요는 없지만 정산은 만약 책이 잘 팔린다면 추후에 하자는 출판사... 돈을 주기는커녕 돈을 달라는 출판사가 태반이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연예인을 만들어 줄 테니 돈을 가져오라는 기획사 사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꽤 큰 출판사 한 곳에서 나쁘지 않은 조건을 제안했다. 그리고 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편집자를 붙여 주었다. 친구는 이야기했다. 자기도 책을 1/3 완성하기 전까지 계약서를 구경도 하지 못했다고. 계약서는 그렇다 쳐도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나를 형식상 '작가'라고 불러주었지만 난 작가가 아니었다. 내가 보낸 원고는 편집자에 의해 거의 모든 부분이 각색되었다. 편집자와 나와의 대화는 주로,

편집자: 이 부분을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의도가 맞으시나요?
나: 네(아니라고 한들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가 전부였다.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표현은 얼마든지 바뀌어도 상관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여행의 내용)가 바뀌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계약서를 안 쓴 게 내겐 행운이었다. 출판사와 나를 묶는 강력한 구속이 없으니 그 관계는 너무나도 쉽게 와해되었다. 무엇을 계기로 출판사와 연락이 끊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다시 길고 지루한 투고가 시작됐다. '이럴 바에는 독립출판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즈음 지금의 출판사를 만났다. 모든 면에서 기존 출판사와 정 반대였다. 규모는 작지만 처우가 좋았다. 두 번째 만남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선인세가 입금되었다. 무엇보다도 내 원고를 임의로 수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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