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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리 Oct 12. 2019

아홉수

일기장을 가장한

종교는 없다. 딱히 미신을 믿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올 한 해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내겐 핑곗거리가 필요하다. 그건 바로 아홉수. 나쁜 일은 없었다. 다치지도 않았고. 내가 불만인 것은 딱히 좋은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 난 단지 가만히 있는 게 싫어 25개국을 여행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한국을 떠난 내게 '어느 나라를 가보고 싶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봐야지'와 같은 목표는 없었다. 한 나라, 한 나라 이동한 게 25개국이 되었고, 어느 순간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국에 돌아왔다.

세계여행을 하고, 강연을 하고, 책을 쓰니 별것 아닌 내게 '멋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주변 사람이 왕왕 있었다. 물론 고마웠지만 그리 듣기 좋지만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기간에 휴학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난 알지 못했다. 마음을 먹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무엇을 하겠다'라는 마음을 먹는 것이라는 걸.


20살부터 28살까지는 1년, 1년이 특별했다.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했고. 29살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작년까지 난 공부, 군대와 같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개인적인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작은 성과에 도취해 있었다. 덕분에 진짜로 중요한 것을 파악하지 못했고,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한 해를 어영부영 소비하며 깨달은 것은 '사회인'이 되며 사라진 의무를 대신해 에너지를 쏟을 무언가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주체적인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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