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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리 Oct 21. 2019

나의 아침

일기장을 가장한

울리는 알람에 맞춰 망설임 없이 일어나 상쾌하게 기지개를 켠다. 곧장 화장실로 이동해 양 볼에 쉐이밍폼을 듬뿍 발라 면도를 하며 남자임을 확인한다. 스킨을 과하리만큼 바른 후 부엌으로 이동해 여유롭게 커피를 내린다. 옆에 있던 토스터기가 '탁'하는 경쾌한 소리로 베이글이 노릇하게 잘 구워졌음을 알려준다.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크림치즈가 발린 베이글을, 다른 한 손에는 텀블러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들고 기분 좋게 출근을 한다.

어릴적 영화에서 봐왔던 출근 전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알람을 한 없이 미루던 학생 때의 나와는 다른 나 자신을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난 눈곱만 떼고 출근하기에도 바빴다. 환상과 현실의 가장 큰 괴리는 출근길에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신림, 일 하던 곳은 강남.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신림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사람은 9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 9만 명 중 한 명으로서 몸을 비비며 사람들 틈바구니 속으로 들어가면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 시작된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밀려 지하철에서 내리고, 타는 것을 반복하는. 셀 수 없이 많이 지하철을 타봤지만, 직장인이 되어서야 지하철도 막힐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기관사는 계속해서 방송을 한다. "차내가 혼잡하니 다음 열차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지하철을 타는 순간 지각이 확정되는 직장인들은 방송을 가볍게 무시하고 어떻게든 한 발이라고 지하철 안에 걸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결과는 연착. 평소 넉넉잡아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출근시간에는 30분 이상 걸린다. 거짓말이 아니다. 출근시간에는 지하철도 '체증'이 있다.



백수 시작

시간에 맞춰 출근할 곳이 사라졌으니 영화에서 봐왔던 상쾌한 아침을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도림천을 따라 뛰며 땀을 빼고, 찬물 샤워로 잠 기운을 쫓아내며 아침을 시작하는 그런 모습을.

백수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환상과 현실의 크나큰 괴리를 알 것이다. 백수 생활이 시작되니 아침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시간을 맞춰 출근할 곳이 없다는 건 굳이 아침에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백수 생활이 시작된 후 난 규칙적으로 오전 11시 30분에 알람 없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늦게 일어났다는 후회와 자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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