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남겼지만 스스로는 구하지 못한 기업
코닥(Kodak)의 연간 매출은 1996년 약 160억 달러(약 22조 4천억 원)로 정점을 찍은 후, 2024년까지 28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는 약 10억 달러(약 1조 4천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매출이 94% 증발한 셈이다.
1970년대 코닥은 미국 필름 시장의 90%, 카메라 시장의 85%를 장악했던 절대 강자였다. "코닥 모멘트(Kodak moment)"라는 표현이 "소중한 순간"과 동의어가 될 정도로 사람들의 추억과 밀접한 브랜드였다. 전 세계 수백만 가정의 벽난로 위에는 코닥 필름으로 찍은 가족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코닥 몰락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이들이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이 기술이 수익성 높은 필름 사업을 잠식할 것을 우려해 기술을 봉인했다. 개발자 스티브 새슨(Steve Sasson)의 증언에 따르면, 경영진의 반응은 "귀엽긴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비싼 전략적 실수 중 하나가 되었다. 코닥이 자신들의 기술을 외면하는 사이, 다른 기업들이 디지털 사진 혁명을 주도했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고, 이후 스마트폰이 모든 사람의 주머니에 고품질 카메라를 넣어주면서 필름과 소형 카메라 시장이 동시에 붕괴했다.
코닥의 몰락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하락은 2000년대 초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을 대체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이자 더 가파른 하락은 2007년 아이폰(iPhone) 출시 이후 스마트폰이 필름과 소형 카메라 시장을 모두 파괴하면서 가속화되었다.
코닥은 너무 오랫동안 필름 수익을 보호하려 했고, 디지털 하드웨어와 홈 프린팅 시장에는 늦게 진입했다. 이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에서 박한 마진을 놓고 경쟁해야 했다. 결국 2004년 78년간 소속되어 있던 다우존스 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에서 제외되었고, 2012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파산 후 더 작은 규모로 재출발한 코닥은 지난 10년간 생존을 위해 온갖 사업을 시도했다. 스마트폰, 암호화폐, 제약, 의류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뛰어들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장 최근의 시도는 Z세대(Gen Z)의 블라인드 박스(blind box) 열풍에 편승한 것이다. 29.99달러(약 4만 2천 원)짜리 레트로 디지털 카메라 '샤르메라(Charmera)'를 출시했는데, 7가지 1980년대풍 디자인 중 어떤 것이 나올지 열어봐야 알 수 있는 방식이다. 놀랍게도 며칠 만에 완판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성공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25년 2분기 코닥은 2,600만 달러(약 364억 원) 순손실을 기록했고, 부채 문제로 인해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에 실질적 의문"이 제기된다고 공시했다. 주가는 25%나 급락하기도 했다. 코닥은 이후 폐업이나 파산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다.
코닥의 비극은 그들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추억을 보존해줬지만, 정작 자신만은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터키 남부 해변에서 찍힌 흐릿한 가족사진이 아직도 벽난로 위에 남아있을 때, 그것을 만든 회사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코닥은 혁신을 두려워하고 기존 사업모델에 안주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자신들이 발명한 기술을 스스로 묻어버린 것은 경영사의 교과서적 실패 사례가 되었다. 디지털 혁명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기업이 오히려 그 혁명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코닥의 몰락은 한국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아무리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져도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가진 기술혁신을 기존 사업 때문에 외면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삼성, LG 같은 한국 대기업들도 코닥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혁신과 사업모델 전환에 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기존 수익원을 포기하는 것이 두렵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위한 필수적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하고도 스스로 묻어버린 코닥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