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억 달러 가진 하버드의 숨겨진 재정적 취약점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돈 걱정 없는 명문대'다. 532억 달러 가치의 천문학적 기금(Endowment)을 보유한 세계 최고 부자 대학 아닌가. 그런데 2024년 재정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복잡한 속사정이 드러난다. 기금 수익(Endowment income)만으로 24억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정작 연방정부 지원금이 끊기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현실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에 따르면, 하버드가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잃을 수 있는 연방 지원금은 거의 10억 달러에 달하며, 연방 연구 자금 7억 달러, 학부 및 대학원 운영비 1억 1천만 달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하버드 전체 운영 예산(operating budget)의 15%에 해당하는 거대한 구멍이다.
그럼 기금에서 돈을 더 빼서 쓰면 되지 않을까? 이게 바로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 실제 상황의 차이다. 하버드 기금의 80%(미국은 대학 기금 기부자가 그 사용 용도를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특정 학과나 프로그램에만 써야 하는 제한된 자금이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게다가 하버드는 보통 기금의 5-5.5%만 매년 사용한다. 연방 지원금 손실을 메우려면 이 비율을 거의 두 배로 늘려야 하는데, 그러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를 형평성(intergenerational equity) 원칙에 의한 기금 보존에 문제가 생긴다. 수백 년간 지켜온 철칙을 깨뜨려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버드의 기금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년 전만 해도 전체 수입에서 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1%였는데, 지금은 거의 40%에 달한다. 투자 수익(연금과 더불어, 기금은 큰 기관투자자에 해당하고 기금을 여러 종류의 투자자산에 투자하여 투자 수익을 거둬 들인다)에 목을 매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시장 변동성에 더 취약해진 것이다.
결국 하버드도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변화와 정부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워싱턴 연방 정부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하버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고등교육 전체의 재정 모델이 근본적 재검토를 받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 대학인 하버드도 연방 정부 지원금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돈 걱정하는 대학'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