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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Jan 06. 2021

관계에 대한 단상 : 물은 한데 모여 섞이고

에세이


사람은 참 어렵다. 매 쉬운 게 어디 있겠냐만 사람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굳이 바벨탑을 무너트리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무 잔인하다 말하지 마라. 우리 인간은 모르기에 알려는 동물 아닌가? 호모 사피엔스, 슬기 인간. 슬기로운 인간이란 말이다. 문제는 자신을 통해서 남을 알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된다. 또한 반대로 자신을 통해 남을 알고자 한다. 기실 타인을 거울삼아 나를 되돌아보기보단 나를 판단의 준거로 삼아 타인을 재고 또 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나를 나로서 있게끔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 개별 인간은 하나의 액체라고. 저마다 열정의 온도가 다르고, 감정의 온도가 다르며, 언어의 온도가 다르다. 끓는점이 다르기에 몇 도에 끓어오르는지, 몇 도에 감정이 고양되고 움직이는지, 그 언어는 차가운지 따뜻한지 모른다. 우리의 피는 36.5 도라지만, 우리의 열정과 감정과 언어는, 이를 비롯한 무수한 것들은 너무나도 다른 온도 차를 보이기에, 우리는 쉽사리 서로를 받아들이질 못한다. 이해하질 못한다. 어울리지 못한다. 섞이질 못한다. 섞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관계란 때로는 예상치 못하게 주어진다. 아니 많은 관계들이 우연히 찾아온다. 과연 우리 삶에 예정된 관계가 몇이나 될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관계의 소용돌이에 우리는 휩쓸린다. 스스로 원하는 관계란 드물다. 낯선 조류에 휩쓸리다가 우리는 암초와 격랑에 부닥치고 만다. 관계란 의외성을 동반한다. 의외성은 사람을 뒤흔든다. 나의 이익을, 나의 영향력을, 나의 자리를, 나의 자아와 정체성, 이 모두인 ‘나’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한다.

어떠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한 이들은 어떠한 목표를 갖고 함께 행동한다. 이것이 관계이며 집단이며 사회이다. 관계 내에서 갈등과 협력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결국 서로 다른 온도의 액체가 한 곳에 모여 섞이는 것이다. 온도 변화는 필연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온도 차에 따른 개인의 변화이다. 열정과 감정, 언어가 뜨거운 사람이 정반대의 사람과 한데 어울린다. 뜨거웠던 사람은 상대적으로 차가워진다. 차가웠던 사람은 상대적으로 뜨거워진다. 결국 언젠가는 그 둘의 온도가 일정하게 비슷해질지도 모르지만, 처음 개인이 마주하고 감당하는 변화는 극적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을 상실하지도 모르는 공포에 마비되고, 누군가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상대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무엇이 중요한가? 어떻게 해야 할까? 열정과 감정, 언어의 온도 차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관계의 맺음 속에 온도 변화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단계는 조절할 수 있다. 공간에 물을 천천히 조금씩 흘려보내자. 나를 인지하고 인식하고 이해했듯이 상대에게도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배려하자. 너의 열정과 감정, 언어는 나와는 조금 다르므로 관용을 베풀고 이해하기 위해, 받아들이기 위해 애써 노력하자. 서로가 자신을 잃지 않도록 흐름을 조절하자. 어차피 모든 물은 한 데 모여 뒤섞이기 마련이니깐.

(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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