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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Dec 16. 2020

관계에 대한 단상: 감정과 기억의 오판에 맞서다.

에세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난다. 그와 그는 그들이 되고, 그들은 우리가 되고, ‘나’와 ‘너’가 아닌 ‘나와 너’가 되고, ‘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는 곧 너이고 너는 곧 나이던 관계는 어느새 ‘내’가 나뉘어 ‘나’와 ‘너’가 되고, 그는 그를 그의 사람에서 그의 사랑에서 그의 삶에서 지운다.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서로 간에 접점을 찾고 공통되는, 공동의, 공유하는 무언가를 키워나간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사소한 오해가 쌓이고 쌓여 불화를 낳고 번져 갈등과 대립은 관계에 종말을 고한다.


만남은 이별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만남이든 이별은 불가피하다. 만남은 이별의 과정이다. 그 과정이 결과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너(희)와 나의 관계를 곰곰이 머릿속에 그려본다. 관계의 지속으로 날마다 벌이고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제 나름의 생각을 한다. 상관과 인과를 구분하고, 잘잘못을 가리고, 호불호를 결정한다. 그렇게 하나둘 나름의 정리가 끝난 것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기억 속으로 스며든다. 현실은 <인사이드 아웃>이 아니기에 기쁨이나 슬픔이가 따로 있지 않다. 사건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우리의 감정과 기억이라는 준거를 통해 결정한다.


사람의 감정이란 얄궂은 데가 있어서 어떤 하나의 사건도 감정의 정도나 농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곤 한다. 다만 이때의 감정은 영구적인 것인 아닌 일시적인 것이다. 이 일시의 감정에 따른 해석이 기억이 되는데 또 다른 어떤 사건에 대해서 판단의 준거로서 적용하고 작용한다. 문제는 사람의 기억이란 얄팍한 데가 있어서 사건을 보는 데 있어 자기중심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곤 한다. 기억은 주관적으로 왜곡된다. 얄궂은 감정과 얄팍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사람은 야릇하게도 사건을 바로 보지 못하곤 한다. ‘사람은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은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의 해석은 필연적으로 오해를 동반한다. 독서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저마다 같은 책을 읽고서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이해하는 것인데, 견해가 다른 것은 우리는 같은 것을 보더라도 각자 다르게 보기 때문인 것이다. 책의 내용은 같더라도 책을 읽은 시공간이 다르며, 독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보는 것을 제 나름대로 이해하고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쩌면 이해의 또 다른 이름은 오해일 것이다. 하물며 사람에 대한 이해는 더욱 그렇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의 무게가 실감이 되는가? 열길 물속을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별은 만남의 이명(異名)이고 오해는 이해의 오명(汚名)에 불과하다며 상심하진 말라. 그렇다고 이별의 불가피함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할 생각도, 오해의 불가피함을 자연스러움으로 포장할 생각도 없다. 다만 현실은 굴복하는 것이 아닌 극복하는 것이다. 모든 관계는 종착역으로 가는 여정이 있고, 그 여정은 짧다면 짧겠지만 제법 긴 편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일지도 모를, 우리일지도 모를 ‘내’ 스스로 일지 모를 ‘나’와 ‘너’가 서있다. 도착할 때까지 ‘나’와 ‘너(희’)는 만남을 좀 더 이어나가기 위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아이라 바이오크는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 간에 네 가지 표현을 당부하였다. “미안하다.”, “용서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별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자. 일시적인 감정과 기억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생각과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얄궂게도, 얄팍하게도, 야릇하게도 사람은 사람과 떨어져 살 수 없다. 삶과 사람, 사랑의 유사성에서 해답을 찾아본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자, 사람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자.’ 나는 당신(들)을 사랑한다.

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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