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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Mar 01. 2021

가족이 뭐라고 우리는 이토록 행복하고 불행하나

<드라마 감상> 스위트홈 연작 4. 은혁, 은유.

 가족. 쉽고 어렵다.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거나 쓰려니 뭔가 머뭇대고 망설여진다. 그래서 말을 하나 빌려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톨스토이는 말하였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나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홀로 살다 죽을지라도 세상에 혼자 태어나는 이 없으니 대부분 가족이란 공동체를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서로 정이 두텁고 살가운 이들도 있겠지만 가족이 남만도 못한 이들도 있다. 가족이 뭐라고 우리는 때로 행복하거나 불행해질까? 가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이토록 가족을 행복 또는 불행하게 하는 것일까?     


 가족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빌리자면 가족이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이다. ‘피가 물보다 진하듯이’ 대개 가족은 친족, 즉 혈연관계이다. <스위트 홈>에는 여러 가족이 나온다. 수영·영수와 그들의 아버지, 진옥과 그녀의 딸, 석현과 선영 부부, 주인공 현수와 그의 가족, 은혁과 은유 남매이다.     


 수영과 영수의 생존을 위해 그들의 아버지는 줄에 몸을 매달고 창문을 넘다 괴물의 공격으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만다. 진옥은 딸과 함께 잘 살아보기 위해 그린빌에 들어섰으나 재난 후 괴물의 공격으로 눈앞에서 딸을 잃고 통곡한다. 수영 남매의 아버지와 진옥에게 자식의 생존은 그들의 목숨보다 귀하다. 수영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걸 수 있었고, 진옥은 제 목숨보다 소중한 딸을 잃고 절규한다. 그들에게 닥친 재난이란 불행을 떠나, 그들은 서로를 위했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행복한 가정은 서로를 위하는 것이 비슷하다.     


 그러나 가족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남보다 못한 석현과 선영은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부부이다. 석현은 아내인 선영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학대한다. 선영은 숨을 죽이고 기를 죽이며 석현의 말과 행동에 굴종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불행했다. 재난이 닥치고 석현은 괴물이 되어서야 선영에게 때늦은 속죄를 한다. 현수는 우연히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이때 가족들은 현수를 위하지 못한다. 현수의 여동생은 왕따인 현수가 친오빠인 게 밝혀져 학교생활을 망칠까 현수를 부정한다. 현수의 아버지는 하필 학교폭력 가해자의 부(父) 밑에서 일한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항의하지 못한다. 현수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이들은 끝내 화해하지 못한다.     


 석현과 선영 부부도 현수와 그의 가족도 제 나름 불행한 이유, 즉 사건과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석현과 선영, 현수와 가족들은 행복한 가족과 다르게 서로를 위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이며 이 점에서 같다. 톨스토이의 말과 달리 불행한 가정도 엇비슷하다. 그들은 서로 위하지 못하여 불행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서로를 위하지 못해 불행했을까?     


 현수와 그의 가족들을 생각해보자. 현수의 가족들은 전혀 현수를 위하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여동생의 실수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 좁은 학교에서 현수와 가족인 것이 끝내 밝혀지지 않았을까? 단지 당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미성숙한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현수보다 어렸고 현수가 들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으니깐. 가족인 현수만큼 혹은 보다 더 자신의 작은 세계가 중요했을 테니깐. 현수의 아버지 역시 현수의 상처와 고통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현수뿐만이 아닌 다른 가족들도, 자신도, 직장도 소중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을 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에 일자리를 잃는다면 가족의 생계는 어떻게 꾸릴 것인가? 현수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같은 집에 한 이불을 덮고 살더라도 그들 스스로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었다. 그 삶에는 각자의 우선순위가 있다. 그들은 그저 현수가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나아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픔은 지독히 깊은 법이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불행했다.     


 가족의 불행은 구성원들 간 우선순위가 달라 서로를 위하는 정도가 달라서이다. 그 차이가 불행의 계기와 사건을 만든다. 그러나 이는 불가피한 것이며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 앞서 말했듯 사람이 태어나 맞는 첫 관계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피로 이어진 관계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피가 진하기에는 물(物)이 너무 많다. 때로 물욕 앞에 가족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가족끼리 왜 이래?’라며 얼굴을 붉히고 피가 끓고 그러다 연이 끊어진다.     


 혈연마저 절연되는 세태에서 드라마 속 은혁과 은유의 관계가 뜻깊었다. 여느 가족들과 달리 은혁과 은유는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은유는 입양되었다. 남매의 부모는 은유의 투정에 못 이겨 발레 공연을 보러 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남매는 천지 고아가 되었고 졸지에 은혁은 소년가장이 되었다. 은혁은 의과대학을 휴학하고 여러 알바를 하며 은유를 부양해왔다. 은혁은 은유를 원망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루한 그린홈에서 은유의 발레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삶을 견뎌낸다. 불행히도 은유는 부상을 입어 더 이상 발레를 하지 못한다. 부푼 죄책감과 미안함에 은유는 엇나간다. 은혁이 자신을 책임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보다 더 수월했을 테니깐. 그러다 재난이 발생한다.     


 은혁의 가장 큰 목표는 은유의 안전이었다. 은혁은 은유의 안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서슴지 않는다. 괴물화가 진행 중인 현수를 비롯해 사람들을 이용한다. 은유에게마저 현수를 이용하는 것에 질타와 원망을 받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은유의 안전이 중요했으니깐. 땅굴을 이용해 남은 생존자들이 탈출을 할 때 은혁은 오지 않은 현수를 걱정하는 은유에게 현수와 함께 돌아갈 것을 약속한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은혁은 괴물화가 진행 중이었다.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은혁은 은유의 CD 플레이어와 헤드폰으로 노래를 듣는다. 플레이어 안에는 찢었다 다시 이어 붙인 가족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는 맑게 웃는 어린 은유와 은혁, 그들의 부모가 있다.     


 은혁은 은유를 가족으로 선택하여 책임을 지었고 끝까지 행복할 수 있었다. 은유의 남은 삶에서도 그들은 가족일 것이다. 앞서 밝히지 않은 가족의 사전적 의미가 더 있다.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이며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태어나 피로 이어진 가족을 맞지만 살아가며 매 순간 가족으로서 가족을 선택할 것이다. 또한 각자의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서로를 위하는 정도를 달리 할 것이다. 이로써 누리거나 책임진다. 이로써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이로써 그들은 이루거나 이별할 것이다.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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