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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Nov 28. 2021

21.11.28. 아케인 연작 1. 파우더 또는 징크스

그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뜻밖의 지진으로 도시의 일부가 가라앉은 후 필트오버는 지상과 지하로 나뉘었다. 지상의 사람들은 지하의 사람들을 저버린 채 발전과 삶을 계속했고, 그 오염물들은 지하로 흘러들어 그들을 병들게 했다. 더 이상 오랜 수모와 고통을 견딜 수 없던 사람들은 모여 다리를 건넜고, 필트오버와 집행관들의 철저한 폭력에 지하의 많은 이들이 가족을 잃었다. 그날 파우더도 부모를 잃었다. 파우더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언니인 바이뿐이었다. 학살의 현장에서 둘은 밴더와 마주쳤고 밴더는 부모를 잃은 둘을 거두었다.

파우더에게는 바이가 유일했다.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 자매는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파우더가 좀 더 자랐다면 더 많은 관계를 가꿀 수도 있었겠지만, 파우더는 아직 어렸기에 바이 외에 관계를 가꾸는 것에 서툴렀고 모자랐다. 파우더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자신이 만든 인형들에게 이름 붙이고 놀이하는 것이 더 쉬었다. 어쩌면 파우더에겐 제 또래에 친구들이 더러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파우더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아이는, 파우더가 친구를 구할 수 있는 장소는 드물었다. 지하의 거리는 안전하지 않았으니깐.

바이는 살아남기 위해 마일로, 클레거와 함께 좀도둑질을 하였다. 파우더는 유일한 가족이자 언니인 바이를 따라다녔다. 파우더는 그들보다 어리고 약했기에 함께 일을 벌이기 힘들었고, 종종 실수를 연발해 마일로로부터 징크스 취급을 받으며 핀잔을 받곤 하였다. 어느 날 바이 일행이 도둑질을 하다 필트오버의 펜트하우스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필트오버의 집행관들은 의회의 압박에 범인을 색출하고 검거하기 위해 지하도시를 종횡하며 전횡을 일삼았다. 지하의 사람들은 이에 격분하고 필트오버와 지하 사람들 간에 갈등은 고조되었다. 집행관들의 수장인 보안관은 분쟁이 참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희생양 삼을 것을 지하의 실력자인 밴더에게 제안하지만, 밴더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자백한다. 그러나 지하 내 방해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실코의 함정으로 밴더는 납치되고 만다.

바이는 밴더를 구출하려고 마일로, 클레거와 통조림 공장으로 떠난다. 파우더의 안전을 위해 남긴 것이었지만, 어린 파우더에게는 바이가 곁에 없는 것이 더 큰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파우더는 바이를 쫓았고 언니를 도우려다 폭발 사고를 일으킨다. 불행히도 폭발의 여파로 마일로, 클레거가 사망하고 밴더도 바이를 지키다 죽음을 맞는다. 바이에게 도움이 되었단 사실에 천진난만하게 다가오던 파우더는 바이의 원망과 현장의 참상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바이의 계속된 질책에 파우더는 울먹이며 눈물로 바이를 돕기 위한 것이었음을 호소한다. 그러나 바이 역시 아직은 어렸기에 파우더를 ‘징크스’라 외치며 손찌검을 하고 제 스스로에게 소스라치게 놀라 파우더를 두고 도망가고 만다. 그렇게 파우더는 바이를 잃는다. 파우더는 바이가 자신을 버리고 갔단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다. 그보다 더 파우더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에 고통스러워한다.

몇 해가 거듭 지나고 파우더는 자신을 거두어준 실코 밑에서 살아간다. 지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우더는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파우더의 내면은 산산조각 나고 파편화되며 분열을 반복한다. 파우더는 부모를 잃었고, 의도치 않은 실수로 가족에 가까운 이들과 유일한 가족인 바이를 잃었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간 폭력에 의존한다. 그의 상상의 나래 속 친구들은 망상의 파편들이 되어 저마다 파우더를 질타하고 책망하였다. 파우더는 불운을 몰고 오기에, 그는 그들의 징크스이기 때문에. 파우더의 내면은 깨지고 깨져 비산하고, 그의 외면은 종잡을 수 없이 부산스럽다 못해 위태로웠다.

그러다 바이의 생존을 알게 되자 파우더는 재차 흔들린다. 결국 수년 만에 바이와 재회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기대와 달리 그 둘은 서로 간에 괴리를 느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거듭하며 그 둘을 서로에게 밀어내는 것도 한몫한다. 바이는 파우더가 자신과 함께 했던 추억을 돌아보고, 헤어진 후의 암울한 삶을 잊으면 파우더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막연히 희망한다. 그러나 파우더에게 지난날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은 현재이기에 과거는 추억으로 남을 수 없고 도리어 숱한 날 자신을 괴롭힌 고통의 억겁에 불과하다. 파우더가 안정을 취하고 안식에 이르는 것은 실코의 조언처럼 파우더를 죽여 과거를 단절하고 ‘징크스’가 되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파우더는 과거 바이가 자신에게 전적인 존재였듯, 바이 역시 그러길 바랐다. 통조림 공장에서의 참상 속에서 바이가 자신을 내치지 않고 받아들여주었기를. 그 후 폭력과 피로 얼룩진 자신의 삶마저도 이해해주기를 말이다. 그러나 과거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바이는 파우더뿐만이 아니었다. 서로가 이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필연적으로 둘은 다시 불행해지고 만다. 바이가 파우더를 두고 타인을 구하기 위해 떠나자 파우더는 결투 끝에 자폭을 택한다.

곡절 끝에 회복한 파우더는 과거 통조림 공장에서의 비극을 재현한다. 바이와 실코, 케이틀린을 납치하고 인질극을 벌인다. 표면적으로 인질은 바이의 동료인 케이틀린인 듯 하나, 인질은 다름 아닌 파우더(징크스) 자신이다. 파우더는 바이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파우더는 케이틀린을 죽이라고 한다. 바이의 선택에 따라 그는 파우더가 될 수도 징크스가 될 수도 있다고. 요구의 본질은 바이에게 최우선이 파우더임을, 바이가 가장 사랑하고 믿고 유대하는 대상이 파우더임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는 케이틀린과의 우정과 자신의 정의에 따라 이를 거절한다. 바이는 광기에 떠밀리는 파우더에게 오히려 선택을 강요한다. 스스로를 기억하고 과거의 파우더로 되돌아오라고. 바이는 파우더에게 과거란 불운한 자신의 실수로 죽은 이들에 대한 망상과 고통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환청에 괴로워하는 그를 구하고자 실코는 바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적으로 대응 사격하고 실코는 중상을 입고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앞두고 실코는 용서를 구하며 울먹이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 너를 내주지 않았을 거다 무엇을 준다 해도. 울지 마라. 넌 완벽해.”

그는 실코를 믿지 않았다. 실코는 과거 자신의 것을 송두리째 앗아간 참상의 주범이었고, 바이가 살아있단 것을 속였으며, 지하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것이라 의심했으니깐. 그러나 바이를 잃고 고통의 나날을 보낸 그에게 바라던 믿음과 유대, 사랑을 주고 언제든 기댈 수 있었던, 자신을 기다려주었던 사람은 바이가 아닌 실코였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이고 존재인지를 떠나서 온전히 그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실코였다. 실코가 바로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가족이자 안식처였다.

우리는 누구나 선택을 하며 그 선택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행운이 함께 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여타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대개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선택이 불운을 낳는 실수일 때도 있다. 때론 이 불운이 남들보다 더 짙어 고난과 시련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선택을 한 제 자신을 스스로가 책망하고 질타하며 스스로를 더욱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때로 자신이 만든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 때 누군가 곁에 있다면, 불행의 늪에서, 절망의 구덩이에서 당신이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서도록 함께해 줄 이 있다면 어떨까? 당신을 당신 자신으로서 오롯이 바라보고 온전히 이해하며 온정을 베푸는 그가 바로 당신이 믿고 사랑하고 유대할 수 있는 대상일 것이다. 그가 바로 가족이며, 그가 있는 곳이 안식처일 것이다. 그가 있기에 당신은 다시 행복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할 것이다. 때로 다시 불행이 따르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에.

이것이 파우더 또는 징크스,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숨을 거둔 실코를 바라보던 그는 고심 끝에 징크스라 적힌 자리에 가 앉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바이에게 말한다.

“예전처럼 날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이렇게 변했어도. 하지만 언니도 변했지. 이건 새로운 우리를 위해서야.”

징크스는 징크스로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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