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설 Nov 29. 2021

21.11.29. 아케인 연작 2. 바이

 가족의 역설, 누구보다 너를 위하기에

한 차례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리저리 뒹굴고 엉켜 붙은 먼지와 잔해, 시신이 즐비하다. 화재로 인한 열기와 매캐한 안개로 뒤덮인 다리 저편에 고즈넉한 빛을 받아, 한 차례 더 밝고 위풍당당한 도시 필트오버를 뒤로 한 채 바이는 밴더의 품에 안겨 지하로 되돌아간다. 어린 바이의 눈망울은 필트오버를 향한다.


“강 건너 나의 친구야 내 손은 텅 비었어 강 건너 나의 친구야 뭐든지 나눠 주렴 조금이면 충분해 그게 내 운이니까 이렇게 나 부탁할게 높은 성 따위는 없어 작은 돌집에 살지 그러니 강을 건너와 찾아...”


일단에 무리들은 생존과 안녕을 위해 다리를 건넜다. 단지 그들이 원했던 것은 고고한 필트오버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도움의 손길이 아닌 손속에 자비도 가차도 없는 폭력이었다. 바이는 학살의 현장을 배회하며 부모를 찾아 떠돌고 밴더의 시선을 따라 가닿은 곳에는 싸늘히 주검이 된 그의 부모가 있었다. 부모의 죽음을 인지한 바이는 눈물을 쏟으며 무너졌다. 파우더는 그저 그런 바이를 바라보며 부둥켜안을 뿐이었다.

 

바이의 최우선은 언제나 파우더였다. 부모를 잃고 유일한 가족인 파우더. 바이는 파우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고, 바이의 선택과 행동은 자신, 또는 보다 더 파우더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바이는 좀도둑질을 하는 것도, 주먹을 쓰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거리에서 생존은 처절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폭력은 보다 철저해야 했다. 그럼에도 바이가 생존을 위한 괴물이 되지 않은 것은 밴더의 너른 품과 가르침 덕분이었다. 밴더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바이와 파우더는 지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밴더는 바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주먹을 쓰는 법부터 거리에서 살아남는 법까지, 그리고 바이가 지니고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그렇다. 바이에게 밴더는 믿을 수 있는 어른이자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파우더가 바이를 믿고 따르며 의지했다면 바이에게는 밴더가 그런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밴더가 납치되었을 때, 바이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밴더를 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밴더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것이었고, 바이가 원했던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바이에게 밴더는 소중한 사람이기에 망설임 없이 그를 구하려고 간 것은 누구나 이해할 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이에게는 바이를 따르는 친구들과 동생이 있었고, 밴더의 말마따나 그런 위치에서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헤아릴 만큼 바이는 성숙하지 않았고 냉철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바이는 위험이 도사리는 함정으로 부나방처럼 뛰어들고 말았다. 그 결과 친구인 마일로와 클레거,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밴더,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는 파우더마저 잃는다. 바이의 바람은 이해할 만한 것이었지만 이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예기치 않은 파우더의 등장과 예상치 못한 폭발 사고로 눈앞에서 다시 소중한 것들을 잃었을 때, 눈앞에 파우더에게 절규하고 분노를 내비치고,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폭력을 쓰고, 제 자신의 행동에 놀라 달아났을 때, 다시 가 용서를 구하고 부둥켜안고 함께 슬픔을 나누지 못했을 때, 그 순간들을 스틸워터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수년 간 바이는 잊지 않고 기억해냈을 것이다. 모진 폭력과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져 있을 때도, 그 아수라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흉악한 범죄자들과 무지막지한 교도관들을 상대로 두 주먹을 피로 물들였을 때에도, 바이는 한사코 잊지 않고 되새겼을 것이다. 그날 자신의 선택과 행동들에 대해.


자신의 무모함과 나약함으로 제게 가장 소중했던 것을 잃은 그 순간을, 몸과 마음과 뇌리에 되새기며 견뎌내 왔을 것이다. 오직 파우더를 다시 만날 그날을 고대하며, 밴더의 유언대로 파우더를 보살피기 위해.


바이가 케이틀린의 도움으로 출소하고 지하로 돌아와 파우더와 재회했을 때, 바이는 함께 있기에 과거처럼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파우더는 생존을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삼았고, 과거 참극에 대한 트라우마는 파우더의 아킬레스건이자, 파우더를 폭력의 광기에 더 물들게 하는 트리거였다. 징크스라 불리는 파우더는 필트오버와 지하의 모두에게 불운이자 재해였다. 한편 파우더는 실코의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실코는 복수의 대상이었다. 바이,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간 원흉이었으니깐. 바이에게 파우더는 실코의 인질이었고 구출의 대상이었다. 실코로부터 파우더를 되찾는 것이 바이의 목표였다. 실코의 부하들과 싸우고 그의 사업체를 부수며 케이틀린과 제이스, 필트오버와 연대하였다. 그 결과 실코와는 타협하고 공존을 논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이가 실코에게 복수하고 싶은 심정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결과 바이는 가장 소중한 것을 되찾지 못하고 도로 잃어버리고 만다.


파우더는 바이에게 선택을 요구하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결정권을 바이에게 주었다. 조건은 케이틀린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는 바이에게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다. 케이틀린은 그를 스틸워터에서 꺼내 주었고 죽음의 고비에서 살려준 은인이자 동료였으며 친구였다. 바이는 오히려 파우더를 설득하였다. 자신이 스틸워터의 차가운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되새기고 다그쳐 파우더와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 파우더에게 돌아왔듯이, 파우더 역시 파우더 그 자신을 기억해내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는 파우더에게 죄악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과거에 파우더가 그였듯, 바이와의 이별 후 징크스란 폭발마의 삶마저도 그였다. 실코를 떠나서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파우더의 삶이었고, 실코를 떠난다 해도 그것은 변치 않는 파우더의 삶이었다. 바이는 이를 이해하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 파우더를 잃었다.


바이가 해야 했던 선택은 케이틀린을 죽이거나, 실코를 죽게 하거나가 아니었다. 자신의 동생을 파우더로 두느냐도 징크스로 두느냐도 아니었다. 바이는 단지 받아들여야 했다. 파우더의 모든 것을. 설사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정의와 다르더라도, 자신의 복수와 바람과 다르더라도. 소중한 무언가를 잃지 않고 되찾기 위해서 바이는 폭력도 복수도 버려야 했다. 오로지 파우더를 오롯이 받아들여야 했다. 오직 그뿐이었다.


바이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한 데 뭉쳐 일어날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이 지하의 모두를 아우르길 바랐다. 바이의 바람은 밴더의 레인즈와 ‘마지막 한 잔’이었을지도 모른다. 밴더가 그랬듯 도사리는 지하의 위협 속에서 너른 품과 힘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며 더 나은 삶을 이루며. 영원히 변하지 않을 사랑하는 동생 파우더의 곁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21.11.28. 아케인 연작 1. 파우더 또는 징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