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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Dec 02. 2021

21.12.02. 아케인 연작 4. 케이틀린

-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며

한 소녀가 있다. 명망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화려한 대저택에서 풍요롭고 호화로운 생활을 해온 소녀는 부족함 없이 자랐기에 그늘진 것도 모난 것도 없었다. 다만 소녀의 모친은 소녀의 삶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가 가문의 명성에 걸맞은 위치에 오르길 바랐고, 가문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다른 고위층들과 어울리길 바랐다. 그러나 소녀는 도통 그런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모친에 대한 반항만은 아니었다.

소녀가 선망하는 대상이 있었다. 그는 도시의 보안관으로서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집행관들의 우두머리였다. 보안관인 그레이슨은 도시의 안녕과 평화를 바랄 뿐 영욕에는 무덤덤한 사람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사랑하였기에 불철주야 시민들을 지키는 보안관 그레이슨은 동경과 존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녀 케이틀린은 자라 집행관이 되었다. 어머니의 노파심과 가문의 영향력으로 현장에서 전면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틀린은 도시의 치안을 위해 맡은 바 보다 더 애썼다.

케이틀린은 필트오버에서 벌어진 일련의 테러 사건들을 좇으며, 조금씩 정보를 모았고 추리해가며 하나의 이론을 만들어나갔다. 그 이론에 따르면 지하에는 무자비한 범죄가 성행 중이었고, 이 범죄들은 어떤 일인에 의해 계획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범죄의 마수는 지하를 벗어나 필트오버로 뻗쳐 왔고, 케이틀린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죄자들을 수사하고자 악명 높은 스틸워터 교도소로 향한다. 케이틀린은 교도관에게 수사 대상인 범죄자와의 면회를 요청하지만, 그 범죄자는 다른 죄수의 폭행으로 취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원한 관계에서 실마리를 얻고자 케이틀린은 독방에 갇힌 가해자를 찾았고, 거기서 케이틀린은 바이를 만난다.

바이는 케이틀린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다. 케이틀린은 부유한 상류층의 부모를 두었고, 부족함 없는 삶을 보내며 스스로의 삶을 부정해 본 적이 없었다. 반면에 바이는 삶을 긍정해볼 시기를 손꼽을 만큼 불우한 삶을 보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바이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정의가 있었다. 바이는 스스로의 올바름을 타협하지 않고 관철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때로 무모하고 저돌적이었다. 바이는 파우더를 찾기 위해 수사에 협조하기로 하고 자유의 몸이 된다.
지하를 누비며 단숨에 사건의 실체를 찾아간다. 케이틀린은 바이와 함께 다니며 지하의 현실을 목격하고 체험한다. 현실은 그녀의 이론보다 더 비참하였다. 그로써 그녀는 바이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바이 또한 필트오버 사람들과는 다른 케이틀린을 겪으며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바이가 자신만의 정의와 신념으로 뭉친 단단한 사람이라면, 케이틀린은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그의 관용과 배려는 상류층의 그것이 아닌 타인에 대한 진심 어린 동정과 연민, 인간적인 관심과 따뜻한 마음에 따른 것이다. 이는 케이틀린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서도 드러나는데, 스틸워터 교도관들의 수감자 체벌에 경악하고, 시머 중독자들의 비참한 생애에 동정하며, 그들 중 하나의 호의에 깊이 감사해한다. 신체의 화학적 변이로 끔찍하게 된 몸을 누더기로 가린 그를 케이틀린은 어떠한 거부감 없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따뜻하게 포옹한다.

필트오버의 많은 시민들은 오직 저 높은 곳에 위치한 진보의 도시만을 자신들의 도시로 여겼다. 지하는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단절된 공간이었다. 지하란 필트오버의 부를 탐내는 ‘운 좋게 묻히지 않고 살아남은 중생’들의 구렁이자 범죄의 수렁일 뿐이었다. 그와 달리 케이틀린은 이 범죄를 척결하여 필트오버뿐만 아니라 지하의 문제도 해결하려고 하였다. 지하의 실상을 목도한 케이틀린은 부패하고 오염된 지하를 회복하고 지하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그의 정의는 누구보다 명징하지만 따뜻하다.

케이틀린은 바이와 출신과 성분은 달랐지만 같은 것을 보고 좇고 나아갔기에 함께일 수 있었다. 케이틀린은 지하에 일종의 자경단인 점화단에게 뜻을 함께 하길 권한다. 마법 공학 원석을 탈취한 점화단의 리더 에코에게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폭력의 되물림을 끝내기 위하여 원석을 자신에 내어줄 것을 간곡히 청한다. 에코는 케이틀린의 진심과 바이의 신뢰를 믿고 이들과 뜻을 함께 한다. 케이틀린은 의회로 나아가 지하의 실상을 증언하고 의회와 필트오버가 이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개입할 것을 요구한다.

케이틀린의 지하로의 여정은 수사이자 모험이었다. 처음 바이는 탐문수사의 협조자이자 여정의 안내인이었다. 케이틀린은 지하로 내려가 바이의 안내와 도움으로 지하의 현실을 목격하고 체험한다. 케이틀린은 바이와 함께 연이은 사건들에 휘말린다. 둘은 고난과 역경을 함께 겪으며 숱한 시련을 함께 함으로써 극복해낸다. 세비카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바이를 케이틀린이 구하였고, 징크스의 공격으로 쓰러진 케이틀린을 바이가 구하였다.

어느새 그들은 탐문과 협조, 여행과 안내의 관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료 이상의 관계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구하고 지켜주었고 서로를 위하였기에 이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연대하였으며 동시에 유대를 나누었다. 바이에게 케이틀린은 감옥을 벗어나 사귄 첫 사람이었고, 케이틀린에게 바이는 필트오버를 벗어나 사귄 첫 사람이었다. 서있는 위치와 서투른 표현과 섣부른 오해로 서로 간에 혼선을 빚고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임에도 닥쳐온 위기를 함께 겪고 견뎌내고 부닥쳤기에 둘의 관계는 두터워질 수밖에 없었다.

케이틀린은 바이의 여동생이자 흉악범인 징크스 때문에 큰 위험에 처한다. 구 통조림 공장의 폐허에서 케이틀린은 징크스를 제압하고 사살할 기회가 있었지만, 바이의 간곡한 외침과 부탁으로 망설이다 실패한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케이틀린은 바이의 부축을 받으며 도달할 파국에 절규한다. 케이틀린은 과연 이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녀는 집행관으로서 필트오버와 지하 두 도시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적인 실코의 말을 빌려 글을 끝마친다.

“그때 우리가 뭘로 버텼는지 아나? 의리야. 형제, 자매가 되어 무슨 일이 닥치든 함께 싸웠다.”

케이틀린과 바이, 서로가 서로의 곁에서 함께 한다면 그 둘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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