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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Dec 21. 2021

21.12.21. 킹덤 아신전

아신의 이름을 물으며

 이름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아신의 이름은 무엇일까? 과히 넘겨짚어 본다.


 亞身(버금 아, 흉할 아, 몸 신). 아신은 조선에 투항하여 귀화한 일부 여진족의 아이이다. 이들은 조선인이 아니기에 조선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2등 국민으로서의 지위에 처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위가 무엇이라. 배타적인 조선 양민들은 이들을 야만인 취급하고 지체 높은 양반들은 이들을 도구로 여긴다. 왜란의 여파로 정세가 위중한 가운데 북쪽에서 여진족의 세력이 나날이 강대해져 전란의 위기가 자라난다. 세도가 자제의 뒤치다꺼리와 위기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국경의 수비를 맡고 있는 민치은 이이제이의 계를 내어 아신의 아버지와 아신의 부족을 희생시키고 여진족의 분노를 잠재운다.


 我訷(나 아, 말할 신). 홀로 살아남은 아신은 민치록을 찾아가 언제가 됐든 여진족에게 복수해주길 청한다. 민치은 아신의 이용 가능성을 보고 군영에 아신을 남긴다. 아신은 돼지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잡일을 도맡아 하고, 때로는 민치록의 명을 받아 여진족을 정탐한다. 해마다 또는 달마다 아신은 민치록에게, 군관과 군졸들에게 여진족을 엄벌할 것을 청하지만 그들은 시기를 따지거나 시큰둥해한다. 아신은 오랑캐이기에 군영과 마을 사람들 모두 아신과 말을 필요 이상에 말을 섞지 않는다. 아신의 말은 그들에게 가닿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신은 啞身(벙어리 아, 몸 신)이다.


 我身(나 아, 몸 신). 아신은 강을 건넌다. 여진의 부락에 잠입한 아신은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비를 만난다. 아비는 감히 바랐다. 언젠가는 조선이 4군 6진을 개척했던 그때처럼 자신들을 이방인 또는 이등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고 조선의 양민으로 처우하길 감히 바랐다. 아비는 그 꿈을 위해 조선의 개로서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개는 쓰임이 다하기도 전에 버리는 것으로 쓰였다. 사지가 잘린 채 십 수년을 목줄에 매여 죽지 못했던 아비는 아신을 만나자 죽음을 청한다. 부족을 모두 잃고 이제나마 재회한 아비인데 간곡히 바라는 것이 죽음이었다. 아신은 아비의 청을 받아들이고 제 손으로 아비의 목숨을 끊는다. 아신은 또다시 홀로 살아남는다.


 我信(나 아, 믿을 신). 아신에게 남은 것은 자신 뿐이었다. 또한 믿을 것도 제 자신 뿐이었다. 강을 건너 돌아간 아신은 군의 대다수가 군영을 비운 사이 민치록의 집무실을 뒤져 사건의 전말을 깨닫는다. 아신은 복수를 결심하고 실행한다. 아신은 생사초를 이용해 군졸들을 감염시키고 감염된 군졸들은 군영 곳곳을 헤집는다. 아신은 군영에 남은 모든 군졸들을 쏘아 죽이거나 태워 죽인다. 그들은 아신을 믿지 않았고 아신에게 믿음을 주지 않았고 아신의 믿음을 배반했기에 아신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我燼(나 아, 타다 남은 것 신). 불타버린 군영을 뒤로하고 아신은 십수 년 전 폐허가 된 자신의 부락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죽음이 거두어진 부락민들이 묶인 채 몸을 괴이 뒤 틀고 있었다. 아신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폐사군에 약초를 찾으러 갔을 때, 여진족은 부락을 급습하였고 부락민 모두가 도륙을 당하고 부락은 화마에 사위었다. 재와 시체더미에서 아신 홀로 살아남았다. 어린 아신은 죽은 부락민들을 대상으로 생사초를 이용하여 시침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되살아났지만 이지를 상실하고 살과 피를 탐하였다. 아신은 줄곧 짐승을 사냥하여 이들에게 양식을 보태어 이들을 달랬지만 이번엔 색다른 것을 바쳤다. 그것은 아신을 조선인들의 방관 속에서 자신을 겁탈하던 군졸이었다. 아신은 부락민들에게 앞으로 이와 같은 것을 더 바칠 것을 읊조린다.


 餓神(굶주릴 아, 귀신 신). 여기 한때는 척박한 삶에도 온정을 잃지 않았으나 지금은 살과 피만을 탐하는 아귀들을 두고, 그들의 복수를 바라 멸시와 겁탈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인내하다 끝내 괴물이 되어버린 이가 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하나 남은 믿음마저 저버려진 이. 그가 공멸에 주린 복수귀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의 이름은 '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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