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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Dec 15. 2020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영화 감상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에서 단연 빛을 발하는 부분은 인남과 레이의 대결이다. 서로에 대한 날 선 폭력은 이 영화를 이끄는 주요 동력이다. 이야기의 힘은 뒤떨어지지만 타격감이 넘치는 영상이 흥미진진하였다.


 영화 제목이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이다. 제목을 보고 드는 생각은 '누구'를 악에서 구원하느냐다. 일단 악은 무엇인가?

 보건대, 악이란 상황이다. 영화에서는 피와 폭력이 난무한다. 유아 납치, 사기, 인신 및 장기밀매, 청부살인, 마약, 폭력조직이 즐비하다. 이 악의 수렁에 빠진 이는 여과 없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이는 유민이다. 유민은 하루아침에 납치를 당하고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는다. 불과 10살 남짓의 아이가 말이다.

 유민은 심지어 장기밀매를 당할 위기에 처한다. 유민은 불행을 선택하지 않았다. 잘못이 없다. 다만 운이 나빴을 뿐이다. 악에서 구원받아야 할 이는 유민이다. 인남은 유민을 구하기 위한 구원자이며, 레이는 인남과 유민을 살해하려는 악한, 유이는 인남과 유민의 조력자이다.

 영화의 표면은 그렇다. 이 표피를 살짝 걷어 들춰내면 영화에는 앞서 말한 세 인물이 나온다. 인남, 레이, 유이. 이 셋 역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악화일로를 걸으며 파멸의 위기에 처한다. 또한 이 셋 역시 악에서 구원받는다.

 우선, 인남이다. 인남은 전직 특수요원이었으나, 제거 명령을 받자 일본으로 도피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요인 암살 임무를 수행하던 인남은 청부살인업자로 삶을 이어간다. 다음, 레이다. 레이의 아비는 백정이었다. 자식 패는 백정. 레이는 아비로부터 짐승의 배를 가르는 법을 배웠고, 폭력과 잔인성이 배었다. 레이는 제가 혐오한 아비보다 더한 인간이 되었다. 레이는 사람 잡는 백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유이다. 유이는 트랜스젠더다. 성전환 수술을 하기 위하여 한국을 떠나 태국의 유흥업소에서 일한다. 유이에게는 아이가 있지만 찾아가지 못한다.

 듣건대, 이들에게 상황은 주어진 것이다. 인남이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고, 레이가 가정폭력범 아비를 두고, 유이의 성 정체성이 동성과 다른 것은 그들에게 불현듯 주어진 것이다. 이들에게 상황은 가히 나쁘다. 살업을 청산하기 위해 한 마지막 일로 인남은 레이에게 쫓기고, 레이는 형의 복수를 위해 인남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고, 수술비용을 벌기 위해 인남을 도운 유이 역시 상황에 휘말린다. 폭력의 연쇄로 막장은 나락으로 치닿는다.

 무엇이 이들을 악에서 구원하는가? 어불성설일지 모르나 레이는 죽음이다. 레이는 폭력에 매몰된 인물이다. 레이의 삶에는 어떠한 의미도 목적도 없다. 자신의 성미를 건드리면 찢어발길 뿐이다. 레이는 형의 복수를 위해 인남의 뒤를 쫓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인남을 죽이려 하는지조차 잊는다. 그의 말마따나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악행과 살생을 일삼으며 다른 이를 파괴한다. 레이는 인남과의 마지막 결전에서 이렇게 될지 알고 있지 않았냐며 묻는다. 이는 레이 스스로에 대한 물음일지도 모른다. 레이의 탈선은 죽음으로 곤두박질쳐야만 종착하는 것이다. 레이는 죽음으로 구원받는다.

 인남은 유민이다. 영주의 죽음을 뒤쫓던 중에 인남은 자신에게 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남은 딸의 존재를 안 순간 삶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갖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이는 치솟는 부성애일 수 있으나, 인남이 바라 마다하지 않은 삶의 표상이 유민이기 때문이다. 인남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영주와 가정을 꾸렸더라면 살았을 '걸어보지 못한 길'이 유민이다. 인남은 악인을 살해하지만 그 역시 살인자에 불과하다. 다만 유민을 지키고 구함으로써 인남은 구원받을 뿐이다.

 유이에게 있어 구원은 돈이다. 유이는 유민을 부탁받고 인남에게 거금의 돈과 파나마의 집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바라던 것을 이뤘을까? 모른다. 영화는 해변가에서 유이와 유민을 비추며 끝나니깐. 세 인물 모두 구원을 받았지만, 살아남은 것은 유이뿐이다. 왜? 단순히, 레이와 인남은 서로를 죽이려 했으니깐. 왜? 덜 단순히,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전적으로 나빴지만, 레이와 인남은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악의 또는 악행을 일삼았기에. 그래서 구원은 어떤 의미로 응보이다.

 누군가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개선하지 않으며 의미와 목적 없는 악행으로 자신과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런데 구원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유이가 유민을 도운 것처럼. 구원은 어떤 의미로 도움이다.

 말하건대, 다만 그들을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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