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우와 재밌다!"
"야, 너 소설가해도 되겠다. 잘썼다!"
처음 받아보는 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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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단편소설 쓰기 과제를 시키셨다.
필수가 아닌 선택형이여서 반에서 열 명도 되지 않는 아이들만 단편소설을 써 왔다.
A4용지 2~3장 정도의 엽편소설을
써 온 친구들이 있는 반면에 9~10장을
가득 채웠을 뿐더러 완성도도 상당한 친구도 있었다.
'나보다 훨씬 잘 쓴 것 같잖아... 내건 그냥 그런것 같은데...'
소설 분량이 많다고 잘 쓴 건 결코 아니었겠으나,
당시의 나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서로 비교당할까 노심초사 했던 것 같다.
기대보다 두려움이 큰 마음으로 반 아이들에게 출력한 나의 단편소설을 건넸고,
어느샌가 아이들의 리뷰가 A4 뒷장 여백에 빽빽하게 채워졌다.
재밌다는 말이 가득 담긴 감상평들이었다.
몇몇은 내자리로 와서 소설가를 해보는 것 어떻겠냐며 나를 비행기 태웠다.
중하위권 성적에 바짝 말라서
축구나 다른 스포츠도 잘하지 못하는 내가 칭찬을 받을 일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잘하려 하기보다,
부모님이 하는 말씀을 잘듣고 지켰고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빼놓지 않고 해내려고 했다.
말을 잘들으면 가끔 당근처럼 칭찬이 따라왔으니까.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었나?
햇볕도 들지 않고, 제대로 된 물도 주지 않았는데...
비료도 없는 마른 모래사장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라는 꿈은
아직도 살아있었다.
내게 햇빛을 달라 했고, 물도 달라 했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20년간 도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한글파일을 열어 키보드를 두드렸던 시간도 꽤 되었고
바탕화면 폴더에는 그만큼 여러개의 쓰다 만 글들이 시간차를 두고 쌓여 있었다.
'쓰다 만'
이 얼마나... 의미가 있으면서 아쉬운 말인가...
시작은 했으나 끝은 내지 못한,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들...
창작에 대한 내 마음가짐은, 단 하나의 작품도 완성해내지 못할 만큼 빈곤했다.
시작하는 것과 시작하지 않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라면,
시작만 하는 것과 완성해내는 것은 신과 인간의 차이 아닐까?
나의 것을 완성해내는 것. 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창작이자 창조인 그것을,
수없이 해내지 못하자...
포기가 습관이 되었고
하다 만,
쓰다 만,
포기하고 마는,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외면했는데...
다시 하고 싶어졌다.
이것마저 해내지 못하면 정말로...
나를 포기할 것만 같았다.
다시 노트북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