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지일까, 환경이 만들어 준 우연일까?
고등학생 시절, 다른 과목은 모르겠으나 수학시간에는 온 집중을 다 했다.
선생님 말씀 한마디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선생님과 칠판 사이를 맹렬히 쫓던 그 눈동자가 귀여웠는지, 선생님도 자주 나를 보며 수업을 진행하셨고 나는 더 열과 성을 다해 수학 공부에 전념했다.
수업이 끝나면 쪼르르 교무실로 달려가 선생님에게 질문 공세를 했고, 개인 자습시간에는 어려운 수학문제들을 앞에 두고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들을 즐기기도 했다.
설렘의 시간이었다.
당시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받지 못했던 내가,
반타작하던 어려운 수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면
수학선생님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잘가르치셨고, 카리스마와 유머도 겸비한 멋진 분이셨다.
선생님으로서도 좋아했지만, 사람으로서도 좋아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갑옷과 방패처럼 단단하게 굳으면, 하지 못했던 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의지와 힘이 생긴다. 연약한 내가 강해진다.
하지만, 만약 내가 다니던 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열정을 잃고 권태에 빠진 사람들이었다면
잘 가르치지 못했다면
나는 수학에 재미를 붙이고, 공부를 잘하려 노력했을까?
내가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게 됐던 건
나의 순수한 마음과 의지 때문이었을까,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이었을까?
운이 좋았던 탓이었을까?
주문을 외워보았지만, 주문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드라마작가교육원 기초반 수업의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하지?
환경 탓하는 건가. 선생님 탓하는 거야? 자문하기도 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결실을 맺을 사람은 나오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현업에서 활동하는 드라마 작가들 중 드라마작가교육원 출신들이 대다수였다.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인터넷 강의나 문제집을 혼자 독파해서 풀어내는 시험이 아니였다.
선생님으로부터의 피드백과 함께 완성해내는 과정을 견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수업이 계속되니 이게 맞나 싶었다. 그냥 드라마작법서를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수업 막바지의 합평을 받기 위해서 3-4달이라는 시간을 감내하는 것은 큰 소모라고 생각됐다.
게다가 나는 교대근무자 아닌가. 고정된 요일에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어떤 강의 들은 휴가를 내야만 들을 수 있었다. 휴가를 구하지 못해 강의를 들을 수 없다면, 적지 않은 수강료를 바닥에 버리는 꼴이었다.
수업을 듣는 시간이 내게 가치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성취를 한 이들 대부분이 그 관문을 통과했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그 길을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까.
나는 교대근무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