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하늘은 높고 내리쬐는 햇빛은 환하기만 하다. 이런 날이면, 응당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커튼을 걷는 게 오늘의 해에게 감사(?)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만약 주말이라면, 향긋한 커피를 내려 마시며 평안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또는 행복감에 젖어 늦잠을 자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의 일상 대부분은 몸이 무겁고, 기분은 바닥 언저리를 기어 다니는 듯하다. 화창한 날씨엔 설핏 웃음이 흐르는 것도 같지만, 속은 울고 있거나 한껏 가라앉아있기만 하다.
그렇다. 나는 우울증이다.
외국에선 dpression이라 칭한다고 한다. 즉, 단어에서 느껴지듯 뭔가 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우울증이라는 말보다는 무기력증이라는 말로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크게 동의했다. 난 울음과 싸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무력감과 싸우고 있다.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싶고, 얼른 머리를 감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 하지만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던가. 우울증은 늘 깊은 물속에 잠겨있는 기분이라고. 암흑 속의 심연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기분이다.
알고 있다. 오늘도 눈을 뜨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고, 매일 쓸고 닦으며 나와 주변들을 관리해야 하는 것도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왜 우는 걸까? 이 슬픔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나 할까? 그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허공에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우울증은 내 친구구나. 이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평생의 숙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안도감을 안겨준 것 같았다.
그리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지난날과 달리, 주변에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이러이러한 계기'가 있었고, '이러이러한 증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펼쳐졌다.
'사실은 나도 그래.'
다들 쉽게 말하지 못했을 뿐, 나와 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가벼운 불안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가볍게 스쳐가기도, 평생을 안고 가기도 하는 병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또 이런 일도 벌어졌다. 본인의 증상이 나와 비슷한 증상임을 깨닫고 나에게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에 대해서 물어보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정신과에 대한 벽을 깨지 못한 듯했다. 사회적 지위 때문에, 부모님의 시선 때문에. 각자의 다양한 이유로 적극적으로 치료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내 주변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익명의 '누군가'에게도 벌어지고 있을 테다.
내 친구, 우울증에게
내 친구의 우울증에게
그리고 누군가의 우울증에게
나는 지난 일을 기록하고 앞으로의 일을 기록하며 나를 돌보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싶다. 이 글쓰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단 한 명의 '친구'라도 나와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족하다.
경중에 상관없이, 힘이 될 수 있기를.
매주 목요일, 내 친구 우울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