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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시진 Mar 14. 2024

눈물이 뚝뚝

내가 정신과에 서슴없이 가게 되었던 이유


병원을 다녀오던 길에 괜히 눈물이 나오려 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잊었던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생각을 줄이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걸 연습하고, 또 곧 잘했었는데.


평소엔 안구건조증에 시달릴 만큼 시리던 눈이 어느새 눈물에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훤한 밖이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인데 말이다.




카페에서 글이라도 쓰고 가려고 했는데.


나는 카페로 향하던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리고 마침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보여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이대로 있다간 웬 사연 많은 여자가 되어 카페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게 뻔했다.


최근에는 이런 적이 많지는 않았는데. 아침에 약 하나를 빼먹은 게 화근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차창 밖을 지나는 온 세상이 그저 슬프게만 보였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약에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스위치라도 켜진 듯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한 생각이 연이어 떠오른다.




그래도 살아야지.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잠깐 뇌가 고장 난 것이고,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이건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그렇게 꾸역꾸역 눈물을 참던 도중에 종량제 봉투가 바닥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와중에도 삶을 이어가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것이다.

그래서 간신히 눈물을 누르고 힘없이 편의점에 들렀다.

 

종량제 봉투만 사려다, 이왕 온 김에 샌드위치까지 하나 골랐다. 그냥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질척한 기분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이 모든 건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고 연습이었다.


그렇게 괜찮아진 것 같았다.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들어와 샌드위치 비닐을 벗기고 테이블에 앉아 한입을 베어 물었다.


참 맛이 없었다. 그냥 음식을 먹을 시간이 되어 습관적으로 먹는 것일 뿐.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적이 언제더라.

그런 게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최근에는 입맛이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과 아무 관련도 없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었다. 화면 속에서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다. 그 앞에 앉은 나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이젠 속이 아프지도 않다. 눈물이 나오는 이유도 모르니까, 이런 눈물에는 속이 아플 일도 없다.


그러나 이 무거운 기분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대충은 알고 있다.

그래서 잊고 살 때가 더 많다. 그렇게 노력도 하고 있고. 잊어야 살 수 있고, 잊어야 울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끔 떠오를 때면 종잡을 수 없이 커지기도 한다.


눈물이 그 생각을 부르기도 하고, 그 생각이 눈물을 부르기도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도가 터지면 아무리 막아도 물이 새어 나오듯이, 내 눈물도 그렇게 뚝뚝 떨어졌다.  




이런 날의 반복


처음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자각했던 것도, 이 날처럼 길을 걷던 평범한 날이었다.


그저 차를 보면 뛰어들고 싶었고, 높은 건물을 보면 뛰어내리는 상상을 자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끊어지길 바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이대로 전복사고가 나길 빌었다.

그리고 남이 보든 말든, 길에서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런 증상이 심해지자 자연스레 무언가 깨닫는 순간이 왔다.


'이러다가 정말 죽겠구나.'


그냥 죽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죽이겠구나.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지체 없이 정신과를 찾았다. 병원을 고르는 기준은 간단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울 것.


마치 헬스장을 고르듯이, 병원도 가까워야 자주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울증을 '마음에 감기가 들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썩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 나는 우울증은 '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느끼고 있다.

     

처음 병원에 간 날, 나는 뇌파검사, 스트레스 검사 등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내가 정말 우울증이라는 걸 대체 어떻게 판단하는 걸까,라는 질문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대부분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이 부분이 이렇게 빨갛게 나타납니다. 여기 보시면 아주 빨간 부분이 있죠.



생전 처음 하는 검사에, 영어로 적힌 많은 결과지를 보며, 의사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내 결과지가 아니라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꺼내든 일종의 자료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제 것은요?'

하지만 곧바로 직감했다.


혹시 이게 제 검사지인가요?


참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당연히 내 결과지겠지.

......

지금 내 상태가 저렇다니.


어느 정도 우울증은 아닐까 인지하고 있었지만, '우울증이 의심되네요.'라는 말을 들을 여지도 없이 정말로 우울증이란다.

     

그제야 지나간 몇 년의 세월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우울증이 의심되는 증상이 꽤 많이 있었고, 너무 오래 그것들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너무 많은 걸 해내려고 하지 마세요. 마음과 정신이 건강해지는 게 최우선입니다.


그날부터 나는 나의 증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약 1년 6개월이 지났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내 마음에 집중하고, 정신 건강에만 신경 쓰려 애썼다.

물론 그게 잘 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연습 중이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다만, 나는 증상이 꽤 심해졌을 때가 되어서야 정신과를 찾아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우울증은 처음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재발률이 50%가 넘는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병을 악화시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망설이지 말기



그래서 '나도 혹시?'라는 생각이 든다면, 꼭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길 권하고 싶다.


혹시나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출생연도 기준)>에 해당된다면, 국가에서 지원하는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이라는 것도 있다.


> 청년 마음 건강 지원 사업 바로가기 <


반드시 위와 같은 지원사업이 아니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건 내키지 않지만 마음을 돌보고 싶다면, 이와 유사한 지원사업도 꽤 많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 좋겠다.


지자체별로 시행하는 사업도 있고,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있다.


흔히 치과를 빨리 가지 않으면 더 증상을 악화시킨다고들 하지 않는가.

마음, 정신건강도 그런 것 같다. 나도 조금 더 빨리 갔다면 더 쉽게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 오늘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평안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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