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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감사하고 용서하고 친절하자

by 차성섭

나는 어제 7월 10일 서울 아들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로 인해 화가 많이 났고, 마음에 부글부글 울화가 끓어 하루 동안 안정을 찾지 못하였다.


이유는 손자가 약을 먹지 않아, 손자 모르게 약을 물컵에 타 놓으라고, 아줌마에게 눈짓으로 부탁하였는데, 아줌마는 약을 타지 않고 물만 떠 놓았다. 기분이 좋지 않아, 내가 아줌마에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느냐고 꾸중을 하였다. 그때만 하여도 기분은 나빠도 화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손자 앞에서 아줌마가 ‘약을 타 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는 내용의 말을 아마 하기 위해 ‘약’이란 말을 하였다. 나는 갑자기 크게 화가 났다. 손자는 7살로 감각이 예민하여 약을 잘 먹지 않는다. 아줌마에게 눈짓으로 의사를 전달한 것도 손자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손자가 약 먹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 나는 노력하는데, 아줌마가 손자 앞에서 ‘약’이란 말을 함으로써, 손자가 자기에게 약을 먹이려는 것을 눈치채면, 손자는 앞으로 물컵에 주는 약을 먹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 크게 났다.


나는 아줌마에게 크게 고함을 치면서, 그렇게 이해를 하지 못하느냐고 꾸중을 하였다. 화를 내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화는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하고, 좋지 않은 생각을 실타래처럼 연이어 생각나게 한다.

집안에 물건이 정리되지 않고 흩어져 있고, 아이들 장난감이 아무 곳에나 뒹굴고, 손자를 보기 위해 아들 집에 오면 내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고 등등.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하니, 나 자신이 너무 서글퍼졌다.

이날 아침만 하여도 나는 마사지를 받고, 오후에 제천으로 내려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 집이 싫고 한 시도 있기 싫었다. 그래서 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제천으로 내려왔다.

제천에 내려와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하니 있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하면서 시간을 죽여(?) 나갔다. 그렇게 뒹굴다가 밤 12시가 되어 겨우 잠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나를 화나게 만든 아줌마는 나에 대한 가해자이다. 물론 아줌마에게 내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아줌마를 꾸중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었으니까. 아무리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꾸중하고 화를 내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생각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내가 화를 내고, 기분을 좋지 않게 가지면, 결국 그것은 나에게 불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분 나쁜 이런 마음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나는 그것이 바로 현재에 감사하고, 용서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줌마가 일하는 것이 느리고, 눈치가 빠르지 않으며, 반찬을 잘 하지 못하고, 싱크대를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고, 또 나에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특히 아이들을 정성껏 돌본다. 아줌마가 입주한 가장 큰 이유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줌마가 손녀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내가 손녀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는 것만 하여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집에 물건이 정리되지 못하고, 아이들의 장난감이 뒹구는 것에 대한 불만은 아들과 며느리아이에 대한 불만이다. 아들과 며느리도 신이 아니고 사람인데, 모든 것을 다 잘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특히 아들과 며느리는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에 출근하였다가, 8시가 넘어 집에 들어온다. 잠이 부족하고, 업무에 시달리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집이 정리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다시 말해 아줌마가 있어 나는 손자만 보면 되고, 손녀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아줌마에게 감사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또 아들이 결혼을 하여 며느리를 새 식구로 맞아들이고, 손자와 손녀를 낳았으며, 열심히 회사에 잘 다니고 있으니, 그런 자식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줌마의 눈치가 빠르지 않아, 손자의 약을 물컵에 타지 않았고, 또 손자 앞에서 ‘약’이란 말을 하여 손자가 그것을 눈치챌 수 있도록 실수한 것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과 며느리가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하는 것도 회사일에 바쁘고, 부모인 나에게 여러 가지 신경을 쓰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친절도 베풀어야 한다. 나는 거짓의 친절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 그대로 넘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옳은 친절은 잘 못이 있을 때, 그것을 고치도록 충고하는 것이 참된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실수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아들과 며느리가 집안을 정리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화를 나게 하였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당시에 옆에 없어, 나로부터 화를 당하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에게는 사과를 할 필요는 없지만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충고는 하여야겠다.

대신 아줌마는 내가 큰 소리로 화를 냈기 때문에, 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아줌마에게는 화를 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여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부탁한 어떤 일을 잘 못 이해하여 하지 못하였을 때는, 변명하지 말고,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충고하여야겠다. 그러면 나도 꾸중을 할지는 몰라도 화는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에서 끓던 울화도 가라앉았다. 다음 주에 서울에 올라가면 내가 마음을 끓었던 것을 정리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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