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 동양에서의 행복 역사
서양에서 행복의 역사
서양의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행복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서양에서 행복이 처음으로 펼쳐진 곳은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에서 행복을 즐기던 사람이 추방당하면서 행복은 변형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에덴동산이 사람의 의식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에덴동산은 상징과 신화의 세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조재룡 역, 미셀 포쉐 저, 「행복의 역사」(서울: 열린터, 2007) p.27>
고대 그리스에서 행복이란 철학의 지적 활동을 통해 얻은 지혜였다. 그들에게 행복은 인간 존재 자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들은 사람이 선하다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행복해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사람이 행복하다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행복은 논리 정연한 연구의 대상, 즉 철학의 대상이었다. 행복은 일생 동안 수양해야 하는 시민의 덕목으로, 이것을 갖췄을 때 행복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조재룡 역, 미셀 포쉐 저, 「행복의 역사」(서울: 열린터, 2007) p.62>
중세에는 오로지 신의 구원을 통해서 존재하는 종교적인 의미의 천복(天福)만이 존재했다. 중세의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완수하고 과거의 천국과 미래의 구원자를 서로 만나게 하기 위해서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웃음과 사랑이 가미된다. 신에게 존재 자체를 위탁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웃을 줄 알았고, 사랑을 완숙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했다. 이러한 중세의 천복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규칙은 철저히 공동체적이었다. <조재룡 역, 미셀 포쉐 저, 「행복의 역사」(서울: 열린터, 2007) pp.72-91>
이후 18세기 철학자들은 행복의 개념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렸다. 계몽시대의 선각자들은 이성을 통해 사물을 개량하고, 지식의 상태를 비판하며, 신비로운 종교의식을 반대하는 이성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자신이 행복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의 구원에 의존하지 않는 그들은 자아의 이성을 추구했다. 그들에게 행복은 천국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자기들의 전지전능함을 주장하는 특권이었다. 그들은 근대 정치의 존재 이유, 즉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행복을 고안해 냈는데, 이러한 행복이 모든 사람의 천부적 권리가 되었다. <조재룡 역, 미셀 포쉐 저, 「행복의 역사」(서울: 열린터, 2007) pp.96-146>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적 대결을 거쳐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는 오늘날 행복은 다양하게 주장되고 있다. 순수 자본주의에서는 자유시장 경쟁이 허용될 때 행복이 오고, 공산주의에서는 자본가 계급이 붕괴하고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때 행복이 찾아오며, 또 복지 자본주의에서는 자유로운 경쟁과 동시에 국가에 의한 적절한 관리가 있을 때 행복한 삶이 가능하게 된다. 냉전체제가 붕괴한 후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는 오늘날 행복은 사회적 협약에서 벗어나 자아를 탐험하여 찾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물질적 쾌락이 될 수도 있고, 자아의 만족이 될 수도 있고, 타인을 위한 봉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가치가 부정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찾다가 그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아닐까?
동양에서 행복의 역사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행복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는 없었다. 중국에서 행(幸)은 운이 좋으면서 흉한 것을 면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복(福)은 부귀 장수 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화(禍)의 반대 의미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행복(幸福)이 독립된 단어로 사용된 것은 많지 않다. 행복이란 단어로 사용되었을 때도 그 의미는 복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거나, 재앙이 없는 것(無禍)으로 사용되었다.
유학을 중시한 우리나라에서는 마음과 몸을 닦는 수신지학(修身之學)에 대한 연구가 많다. 수신지학은 좁게는 생활습관을 통해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며, 넓게는 세상의 이치를 궁리하고 이에 따라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 남에게 이를 전파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행복에 대한 동양에서의 연구방법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관계 속에서 또 논리적 분석보다는 통합적 실천과 각성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서양 행복론자들이 추구하는 방법과 상통하는 것이 많다. <바이두(baidu) 백과사전>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변혁기에는 이상을 추구하는 도가(道家)가 기존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다.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면서 사회는 혼란상태로 빠져들었다. 사회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법가(法家)가 등장하였다. 엄격한 법의 적용을 주장하는 법가는 능률과 효율을 중시하면서 새로운 집권세력을 출현시켰다. 그러나 극단적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강요하는 법가는 사회의 안전과 조화를 추구할 수 없었다. 사회의 안전과 조화를 위해 유가(儒家)가 등장하였다.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인정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유가가 사회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유가가 장기간 지배세력이 되면서 사회는 또 침체되고 부패하게 되었다. 사회가 침체되면서 또다시 정치적 변혁기가 나타나고, 도가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순환과정을 반복했다. 불교(佛敎)도 종교로서 서민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쳐왔다.
따라서 다음에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사상과 일상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도가(道家), 법가(法家), 유가(儒家), 불가(佛家)의 행복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다. 먼저 도가의 입장에서 행복은 무위자연적인 것이다. 도가는 청정(淸淨)하고 무위(無爲)하며, 자연의 법칙에 순응할 것을 주장한다. 법가의 행복관은 신상필벌에 의한 엄정한 법치에 의거한다. 법가는 부국강병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유가의 자연법적인 예(禮)에 대해 실정법적인 법의 우위를 주장한다. 유가의 행복관은 수양과 도덕을 통한 인위적 행복관이다. 유가는 적극적이고 진취적 삶을 제창하면서, 인위적 삶을 위해 분발할 것을 촉구한다. 불가의 행복관은 고(苦)、집(集)、멸(滅)、도(道)에 의한 사성체(四聖諦)이다. 불가에서 행복과 불행은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운명 또한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다. 불교는 삶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回)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사성제四聖諦)는 불교 중심 교리의 하나로, 네 가지 가장 훌륭한 진리라는 뜻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와 그 해결 방법에 대한 네 가지의 근본 진리를 의미한다. 제(諦)는 진리, 진실이란 뜻이며, 그러한 진리가 신성한 것이라 하여 사성제 또는 사진제(四眞諦)라 한다. 이 사성제에는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의 네 가지가 있다. 고제는 현실세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중생의 현실세계가 모두가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집제는 현실세계의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으로, 번뇌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한없이 윤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괴로움의 원인은 내 마음 안에 있다. 멸제는 온갖 괴로움을 멸하는 것으로 이가 곧 열반이요, 해탈이다. 도제는 괴로움과 무명ㆍ번뇌를 멸하고, 열반ㆍ해탈을 얻어 십이인연을 자유자재하는 방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