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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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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섭 Mar 23. 2020

2020년 03월 14일 토

밭에 일을 가면, 생각보다 보통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지난 03월 14일 토요일, 7시 30분에 일어나 몸균형운동을 하고, 아내가 끓여 준 떡국을 먹고, 9시 30분에 나 혼자 밭에 갔다. 

올해부터 밭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지 않기로 안내와 약속하였다. 아내는 돈도 생기지 않는 일을 너무 힘들게 한다고 불만이다. 아마 내가 밭에 일하고 집에 오면, 허리가 아프다, 힘이 든다 하는 것이 듣기 싫은 모양이다.     

나는 농사일을 잘하지 못한다. 일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농사짓는 것도 간단한 것만 한다. 과일나무를 심고, 고구마, 땅콩, 감자, 상추 등 어렵지 않는 것을 한다. 내가 농사를 짓는 것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시 말해 무력감이 들지 않도록 농사를 짓는 것이다. 

밭 4백 평 가운데 비닐하우스와 과일나무 심은 곳을 제외하면 200평이 되지 못한다. 200평 가운데 반이 울타리로 쳐있어, 기계를 빌려 밭을 갈 수도 없다. 밭일을 육체노동으로 하여야 한다. 200평도 안 되는 농사를 몸으로 짓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봄에 농작물을 심고, 가을에 추수하는 것 외에는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도 농작물을 가꾸는 데 힘들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힘이 든 것은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풀을 직접 뽑기 때문이다. 풀만 뽑지 않으면, 농사일은 항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농사를 즐기기 위해 풀을 메지 않고, 예초기로 베기로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봄으로 농사 준비를 하여야 한다. 농사일하면서 항상 내가 느끼는 것은 밭에 가면 예정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이번 주 할 일로 나는 과일 심은 밭의 고랑을 깊이 파고, 퇴비를 주기로 하였다. 밭의 고랑을 깊이 파는 것은 논을 복토하여 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과일나무가 습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과일나무의 습해를 막기 위해서는 고랑을 깊이 파서 과일나무의 뿌리가 습한 곳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게 하는 것이다. 고랑을 깊게 파기 위해서는 지금 하여야 한다. 지금은 얼었던 것이 녹으면서, 땅에 빈 공기 부분이 많이 생겨 상대적으로 잘 파진다. 삽으로 파면 큰 힘을 쓰지 않아도 파진다. 봄이 지난 후, 땅이 단단하여지면 삽을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다.     

먼저 가축분 퇴비를 주었다. 땅의 산성화를 방지하기 위해 유기질 퇴비만 주고, 다른 퇴비를 주지 않는다. 화학비료는 거의 주지 않는다. 또 제초제나 살충제도 잘 뿌리지 않는다. 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먹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퇴비를 주는 것은 힘이 들지는 않았으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 내가 직접 만든 퇴비까지 과일나무에 주었다. 그러다 보니, 퇴비를 주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오늘 퇴비 주는 것과 밭고랑 깊이 파는 것을 마치려고 생각하였는데, 또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밭고랑 파는 것은 전체의 5분의 1도 하지 못하였다. 과일나무밭의 고랑 파는 작업을 조금 하니, 6시가 되었다. 내일 다시 하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인 15일 일요일 8시에 일어나 몸균형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9시에 밭에 갔다. 

어제 하다가 중단한 밭고랑 파는 일을 하였다. 밭고랑 흙을 파서, 이랑에 옮겨, 어제 뿌린 퇴비를 덮었다. 퇴비를 덮지 않으면, 거름 냄새가 많이 나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정도 되어서, 끝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2시가 되어서 끝났다. 또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정말 바람이 강했다.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모링가 덮은 비닐이 날렸다. 지금 모링가 덮은 비닐이 벗겨지면, 모링가가 죽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모링가가 현재 살아 있는지 알 수 없다. 현재까지 보온 상태는 내가 의도한 데로 되어왔기 때문에, 비닐을 벗길 4월 말까지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래서 바람에 날린 한 겹은 다시 덮기 어려워 걷어 버리고, 나머지 한 겹이 날리지 않도록 흙을 덮었다. 그렇게 하니 시간이 5시가 되었다.     

5시에 집에 오니, 아내가 고기를 준비하여 저녁 반찬으로 주었다. 소주를 한잔하였다.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아내가 하여 준 저녁을 먹고, 그것도 고기에다 소주를 한잔 곁들여 먹으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일을 마쳤을 때의 성취감, 맛 좋은 음식을 먹었을 때의 여유로움과 따뜻한 마음, 이것이 바로 귀촌의 즐거움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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