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곳이다. 가정은 사람의 삶에 기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정이 없거나 화목하지 못한 사람은 휴식을 취할 가장 중요한 곳을 잃게 된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매우 잔인하게 대한다. 이것은 그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로서 가족 간의 불화나 다툼을 해결할 때, 무턱대고 옛 상처를 건드리는 것을 옳지 않다. 가족 간에도 상호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타협의 기술을 배우야 한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p.207-209>
바람직한 부부관계
부부간의 바람직한 관계이다. 어떤 부부든지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어릴 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또 생각과 취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배우자가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완전한 것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이 있다. 부부간이라도 각자의 삶은 존재한다. 따라서 상대의 공간을 인정하고 허락해야 한다. 상대방도 자신의 삶과 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부부간의 많은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부부간 친밀감을 높이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훈련이 있다. 각각 10-15분 동안 아무런 방해 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한다. 상대방의 말을 다 들은 사람은 들으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한다. 이때 결코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p.176-178/182-184>
둘째, 상대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고트만 교수는 감정적인 관계를 잘 맺어두면 차이점을 참기가 힘든 경우에도 여전히 행복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고트만 교수의 조사 결과를 보면 부부 문제의 69%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부부는 논쟁 중에도 더 많은 유머와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 마음을 닫기보다는 현재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부부가 상호 긍정적 감정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상대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또 술 먹었어?”, “원래 못 하잖아.”와 같이 상대의 인격과 관련시켜 말하지 말고, “피곤한가 보네.”라거나 “숙취가 심하구나.”하는 식으로 그 상황에 맞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때는 “원래 당신은 리더십이 뛰어나잖아!” 하는 식으로 그 사람의 인격과 연결시켜 칭찬하는 것이 좋다. 좋은 일을 칭찬하는 것과 함께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 기뻐한다는 뜻일 뿐 아니라 상대의 꿈을 존중하고 부부관계를 가치 있게 여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칭찬은 상대를 긍정적으로 보는데 도움이 된다. 진심에서 우러난 칭찬은 상대를 행복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성장을 위한 노력을 촉진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친화적 관계에 있는 부부들은 서로로부터 최선의 것을 끌어내고 상대가 이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현상을 미켈란젤로 효과라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덩어리를 파내며 이상적인 형태를 찾아내듯이 낭만적 부부들도 상대방이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가도록 도와준다. /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p.179-184 / 소냐 류보머스키 저, 오혜경 역,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서울: 지식노마드, 2008) pp.260-261>
셋째, 부부간에 감정을 수시로 교환하는 것이 좋다. 행복한 부부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감정적인 정보를 교환한다. 꼭 친밀한 신체 접촉이 아니어도 좋다. 간단한 질문, 눈길, 몸짓, 스킨십이나 전화 혹은 문자 메시지 정도라도 좋다. 부부간에 감정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도 비난하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 말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발언권이 없을 때는 먼저 듣고 자신이 말할 차례가 되면 말해야 한다. 말을 할 때 화내거나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당신이라는 2인칭보다 나라는 1인칭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질문을 할 때는 상대방이 자신의 관점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것이 좋다. 개방형 질문을 통해 배우자가 중요시하는 가치와 이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소통은 서로의 경험을 알아가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179 / pp.182-184>
넷째, 부부간의 갈등 처리 방법이 중요하다. 존 고토만은 결혼한 부부들을 비디오로 촬영해 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를 관찰했다. 그에 따르면, 부부간 갈등을 다루는 잘 못된 방법이 불행한 결혼의 특징이다. 불행한 부부는 의견이 다를 때 격하게 시작하고, 비난을 하고, 조롱하고, 방어를 하거나, 아예 담을 쌓기도 한다. 행복한 부부가 덜 싸우고 덜 시끄럽게 싸우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부부도 싸운다. 그들은 싸우되 다르게 싸운다. 말다툼 도중에 긴장과 부정적인 요소를 감소시켜주는 사소한 행동을 한다. 즉 우호적인 유머를 사용하거나, 애정을 표현하거나, 솔직하게 말하는 것 등등이다. 행복하고 행복하지 않은 부부의 차이점은 싸우느냐 싸우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싸울 때 상대를 무시하고 나의 주장만 하느냐, 아니면 상대의 말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느냐의 차이에 있다. <소냐 류보머스키 저, 오혜경 역,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서울: 지식노마드, 2008) pp.262-263>
바람직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부모의 입장과 자식의 입장이 다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인격이 갖추어진 행복한 자식으로 키우는 것이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장성한 자식이 늙은 부모를 효로서 섬기는 것이다.
먼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행복하게 키우는 것이다. 행복한 아이는 학업이나 직장생활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 행복한 아이가 학급에서 인기가 많고 잘 지내며, 학습 속도도 빠르고, 과제도 잘 수행한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217> 그렇다면 아이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까?
첫째, 자녀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참된 사랑이다. 자녀가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의 성격과 능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애착 형성이 잘 이루어진 아이는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익혀나간다. 사랑에 대한 아이의 믿음이 잘 형성되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아이의 욕구에 언제나 반응하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는 불확실한 상황에 더 잘 대처한다. 탐험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놀 줄 안다. 그리고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잘 이해하고 다룬다. 반면 감정 활용 능력이 결여된 아동은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노나 공격성을 느끼는 경우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고, 흡연을 하고, 약물을 복용하고, 알코올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218>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자식이 하여야 할 모든 것까지 부모가 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식이 잘 못한 일을 하는데도 그것을 방치하는 것도 좋지 않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가운데 가장 좋은 사랑은 자식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사랑이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는 자식을 소유하고, 자신의 삶의 보람을 자식에게 전가시키려 하고, 이에 집착한다. 이것은 참된 부모의 사랑이 아니다. 자식을 자립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식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랑을 많이 주어야 하지만, 또한 자식이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게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웨인 다이어 저, 오현정 역, 「행복한 이기주의자」(서울: 21세기북스, 2008) pp.239-240>
둘째로 부모보다 자녀를 중요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좋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로, 부모도 부모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가치가 있다. 자식을 위해 부모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모도 자기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참된 가정의 화목이 있다. 예로서 가끔 자녀를 동반하지 않고 외출을 하면, 자식 때문에 집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부모는 자녀가 자기의 자신감과 자긍심을 키우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해야 하며, 또 자녀가 스스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굳이 피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것은 자녀에게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인 다이어 저, 오현정 역, 「행복한 이기주의자」(서울: 21세기북스, 2008) pp.242-243> 그렇지 않고 부모가 자녀를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자식으로 하여금 남에게 의존하는 습관을 키우게 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사랑의 경계를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다. 부모는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면서도 경계를 정해놓아야 한다. 경계는 제재의 의미가 포함된 규율의 개념과 다르다. 여기서 경계는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규칙을 명확히 한 뒤 부모는 뒤로 물러서고 아이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이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이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점만 명심하면 자신의 잠재력을 쉽게 발달시킬 수 있다. 이때 부모는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물론 불필요한 개입을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 아이가 잘 못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아이의 성격으로 지적해서 야단쳐서도 안 된다. 단지 특정한 행동에 대해서만 지적해야 한다. 이러한 부모들은 또한 가족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에게 영원한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가정에서는 여성도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넘어선 자신만의 생활을 할 수 있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221>
셋째로, 자녀에게 부모의 자책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들을 모델로 자신의 역할을 배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부모가 능력이 없어도 자식에게는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마음을 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부모의 능력이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소득보다 아이의 발달에 더 중요하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은 진실과 믿음이다. 사회적 능력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어떤 부모도 이러한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 자식에게 이런 사랑을 주면 된다. 자식에게 좋은 옷을 사주지 못하고, 좋은 음식을 먹이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한다고 하여, 부모는 자책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가 자책감으로 가득 차 있고, 자식에게 미안하다며 안절부절못하면서, 자식에게는 자신과 같이 살지 말라고 하면, 이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흠집이 난 제품을 팔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웨인 다이어 저, 오현정 역, 「행복한 이기주의자」(서울: 21세기북스, 2008) pp.239-240> 친구는 친구가 가진 장점 때문에 친구를 사랑하고, 애인은 애인이 가진 매력 때문에 애인을 사랑한다. 이들은 그들이 가진 장점이나 매력이 줄어들면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이 불행에 처했을 때에도 가장 큰 의지가 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 부모의 사랑은 성공의 길을 가고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의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경우에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위안과 안정감을 준다. <버트런드 러셀 저, 이순희 역, 「행복의 정복」(서울: 사회평론, 2008) pp.215-216>
넷째 마지막으로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은 어린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놀이로 보낸다. 놀이는 중요한 생물학적 기제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 아이가 놀이를 하는 것은 일종의 자립을 배우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지 위험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인간사회는 신과 같이 완전한 존재자의 사회가 아니다. 대소변과 같이 더러운 것을 배설하며, 탐욕을 부려 싸움도 한다. 사람은 위험이 없는 곳에서 살 수 없다.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위험에 대처하며,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아이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를 빼앗는다. 아이는 위험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배워야 한다. 자녀의 자립을 도와주는 부모는 자녀의 홀로서기 시도가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행동으로 생각한다. 이런 아이는 부모에게 딱 붙어 있지 않는다. 부모가 없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불상한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p.219-220 / 240>
이와 같이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랑과 자립성을 가지고 자란 아이는 적응성과 유연성을 발달시킨다. 적응 유연성은 고난으로부터 회복하는 능력을 말한다. 적응 유연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후 3년 동안 형성된 부모와의 유대감이다. 신념 체계가 적응 유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레이놀즈 교수는 적응 유연성은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그 후에 발전된다고 한다. 적응 유연성이 뛰어난 아동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능숙하게 이끌어 내는데, 이것은 솔직하고 애교가 있고 유머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징을 잘 파악하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잘 안다. 적응 유연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폭력, 육체적 및 성적 학대, 알코올 중독에의 노출 등이 있다.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랑은 적응 유연성을 약화시키는 부정적 요소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p.223-224>
다음에는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에 대한 효이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효를 중시하였다. 우리의 전통문화인 유학이나 불교에서도 효를 중시하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개인주의 의식이 강한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효의 개념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나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는 두 가지 이유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사람으로서의 도리이다. 사람은 사랑을 가진 도덕적 존재이다. 참 사랑은 나로부터 남으로 전파되어 간다. 부모는 나를 있게 한 사람들로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따라서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효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효를 덕행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둘째 호혜적 윤리로서 부모의 은혜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보답이다. 부모는 모든 것을 바쳐 자식을 사랑하고 키운다. 불교의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는 품에서 지켜주고,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는 등 부모의 은혜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는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를 할 것인가?
첫째, 수신(修身)이다. 부모는 나를 있게 한 근원이다. 따라서 효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행동을 조심하는 것은 물론, 자기 몸을 잘 간수하고 단련하여 훌륭한 인격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물질적 봉양이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생활력이 떨어진다. 나이 든 부모가 먹고 입고 사는데 불편함이 없게 하고, 건강을 돌보는 것이 물질적 봉양이다. 생활력이 떨어진 부모를 자식이 실질적으로 모시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인사를 하거나 연락을 하여 부모의 안부와 건강을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정신적 봉양이다. 정신적 봉양은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다.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부모의 뜻을 헤아려 실천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불의한 일에 빠지지 않도록 충심으로 간쟁하여 부모를 욕되지 않게 하며,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떨쳐 부모를 영광되게 하는 것은 부모를 정신으로 모시는 효의 완성이다.
현대사회가 핵가족으로 변화면서 자식이 부모를 직접 모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자식이 직접 모시지 않더라도 효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신을 수양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이고,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은 자식들이 서로 의논하여 형편에 따라 일정한 용돈을 보내고 전화하고 찾아가는 것을 수시로 하면 되고, 정신적으로 봉양하는 것은 말과 행동을 공손하게 하고 부모가 어떻게 지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관심 있게 관찰하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뿐만 아니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만약 부모에 대한 진실한 효를 실시하여 부모와 한 집이나 이웃에 거주하게 되면 자식의 양육문제도 상당부문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핵가족화된 현대사회에서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된다.
바람직한 형제자매간의 관계
부모는 자녀를 대할 때는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르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조건 같은 것이 아니라 조건에 맞게 같아야 한다. 성인이 된 형제자매 간에도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 원칙이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형제자매 간의 관계를 위해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제의 말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형제는 공유할 수 있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같은 곳에서 자라고 같은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며, 서로 싸우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공동의 추억은 서로의 유대감을 강화시켜준다. 어느 형제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형제에 대한 우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끔 과거 어릴 때 같이 생활한 것을 기억함으로써 우애를 확인하는 것은 형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견고하게 할 수 있다.
둘째, 과거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어릴 때는 한 두 살의 나이 차이에 따른 생각이나 능력의 차이가 크다. 성장과정에 따른 변화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형과 아우와의 능력이나 역할, 위치 구분이 분명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나이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다. 성인의 경우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개인차를 크게 한다. 특히 각자 가정을 꾸려 각자 다른 배우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 같은 형제라도 생활환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따라서 형이라고 하여 성인이 된 동생을 어린애 취급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항상 현재형으로 형제를 대하고, 친구를 대할 때처럼 예의와 관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 물론 말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형제간이라도 무례한 말투는 성인이 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셋째,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형제가 성장한 후 각자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하게 되면, 다른 가정을 꾸리게 된다. 각자 자녀가 태어나면, 가족 구성원부터 차이가 난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농업사회가 아닌 정보사회이다. 농업사회에서는 같은 일을 하였기 때문에 협력할 일이 많다. 자연히 만날 기회도 많다. 봉건 가족제도에서는 같이 만나는 가족행사도 많았다. 그러나 산업사회와 정보사회에서는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다.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삶에 바쁘고 지치다 보면, 형제에 대한 관심도 없다. 가족 행사도 제사, 벌초, 생일 등 몇몇에 제한되어 있다. 만나는 경우도 일 년에 정해진 몇몇 뿐이다. 형제의 만남은 의무처럼 끝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외식, 영화 등으로 일상적 틀을 깨는 것은 형제의 우애를 확인하고 증진시키는데 좋다. 그리고 형제들만의 여행이나 등산 계획을 짜는 것도 좋다. 의무적인 만남은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어렵지만, 외식, 영화, 등산, 여행 등과 같이 취미 혹은 의도된 목적에 의한 만남은 새로운 경험과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새로운 경험은 형제간 만남의 권태감을 줄이고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한다. <리즈 호가드 저, 이경아 역, 「영국BBC다큐멘터리 행복」(서울: 예담, 2005) p.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