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학의 의미와 역사

by 차성섭

어떤 사람이 고증학의 의미와 역사에 대해 질문하였다.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고증학(考證學)은 중국 명나라 말기와 일어나 청나라 때에 발전한 유학의 하나의 연구방법으로, 한나라와 당나라의 훈고학을 계승하여 옛 문헌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 경서(經書)를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즉 고증학의 연구방법은 고서(古書)를 두루 참고하여 확실한 실증적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여,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게 글자와 구절의 음과 뜻을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고증학은 훈고학(訓詁學), 음운학, 금석학, 잡가, 교감학(校勘學) 등 5가지로 나눕니다.

고증학이 일어난 배경은 명나라 말기 중국에 들어온 서양의 선교사들로부터 실용적인 서양문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송나라의 성리학과 양명학이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로 현실에 바탕을 둔 사실을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고증학의 발전은 고염무의 절서학파에 의하여 시작되어, 호위와 염약거에 의하여 크게 발전했습니다. 청나라 말에 이르러 유월, 장병린, 왕국유 등에 의하여 계승되었으나, 사회적인 혼란으로 쇠퇴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후기입니다. 정치적·경제적 대응책을 모색하였던 실학자들로 대표됩니다. 그들은 정치적 제도개혁을 주장하는 저술과 농공상기예에 대한 저술들을 쓰게 됩니다. 예로서 유형원의 ‘반계수록’, 이익의 ‘성호사설’, 정약용‘의 ‘경세유표’ 등과 박제가의 ‘북학의’,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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